Page 15 - 2023서울고 35회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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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터의 옛 교정과는 달리 새로운 부지의 건물은 현대적이라고는 하나 운
치라고는 1도 없었고, 나무도 그늘도 새소리도 없었다. 체육시간마다 운동장에
일렬횡대로 서서 허리 숙여 돌맹이를 주워 내야하는 새로운 숙제만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인데도 1년이 채 안되어 외벽에 금이 가는 일도 있었고
체육관과 과학관도 옛 교정의 운치와는 거리감이 있는 삭막한 건물들이었다.
유일한 자랑은 정문 수위실 시설이 맞은편 학교보다 훨씬 좋아서 난방이 들어
온다는 정도.......
이렇게 두 교정을 거치며 1학년을 보낸 우리는 당시에는 그 의미조차 몰랐던
경희궁터의 옛 교정을 기억하는 마지막 서울고 기수가 되었다.
그리고 서초동의 2년 6개월 동안 친구들과 농구, 야구, 축구 등 운동도 하고, 서
울고 축제의 밤도 즐기고, 생활관에서 1주일간 단체생활도 하고, 여름방학동안
자율학습 명목으로 등교하여 야외수영장과 농구장을 오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한편 이런 추억으로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지만 대학 입시라는 스트레스는 항
상 그림자처럼 우리 곁에 한 몸이 되어 붙어있었고,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율화 라
는 변화 속에도 3학년이기에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졸업한 선
배들이 3학년들의 자율화에 반대하였다는 후문도 있어서 얼굴도 모르는 졸업생
선배들에 대한 불평도 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서울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많았음에도 나는 대학을 진학하고 서울
고동창회에 나가지 않았다. 동기들과의 만남은 누구보다 즐겼어도 선배들과의
공식적인 자리에는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
젊은 혈기에 선배들의 신고식이나 군기잡기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굳이 참석
하여 사건을 만들지 말자는 주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동
문들이 주는 의미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의 젊음이 너무 호기로웠고
즐길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이 없었다.
15 _ 4060 우리들의 3色5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