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2023서울고 35회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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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 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버스를 탓는데 시청 앞에서부터 분위기
가 어수선했고, 서울역광장을 돌아가는데, 시위대들이 스크럼을 짜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남산 도쿄호텔에서 버스를 내려 시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의 방향에서 학교별로 스크럼을 짠 시위대가 몰려들었고, 교통경찰
오토바이와 경찰차가 도망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대학생
들 뿐 아니라, 교수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은 공원이 된 3.1고가도로와 빌딩
창문에도 사람들이 빼곡했다.
이른바 ‘80년 서울의 봄’ 시위였다.
라일락 향기는 지랄탄과 취루탄 가스가 뒤덮었고 캄캄한 밤까지 시위는 이어
졌다. 시위대가 시내버스를 몰아 페퍼포그 진압차량을 들이받아 불을 붙이며 시
위는 통제(진압)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진압경찰 쪽에서 협상을 제안했고, 시위 지도부와 협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이었다.
시위대 지도부로는 대표로 심재철(서울대 총학생회장), 유시민(서울대 학생
회장), 신계륜(고려대 총학생회장), 형난옥(숙명여대 총학생회장), 이해찬(서울
대 복학생 대표) 등과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이수성이 참석했다.
결국 시위대의 안전귀가를 요구하며 해산한다. 쿠데타군은 이날 밤 계엄령을
확대하고, 5월 17일부터 광주에 진압 군인들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이후 우리학교는 서초동 신교정으로 이전하고 우리는 ‘말죽거리 잔혹사’ 같았
던 그 엄혹했던 시절을 지내왔다.
그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0년이 되어가는 오늘,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본
다. 졸업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들렀던 서초동 교정에는 옮겨 심고, 새로 심었
던 나무들이 아름드리가 되어 학교 건물들 사이에 자라있었고, 어김없이 당시 우
31 _ 4060 우리들의 3色5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