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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경상도
91 비안교회
의성군 비안면 만세길 511-12
3.1독립만세 운동 경상북도 시발지 기념탑
“세 분의 총회장을 배출한 교회”
머릿돌
비안교회
의 결신자가 나왔고 박갑년 씨 주택이 예배
의성군 비안은 경북에서 제일 먼저 3.1운동 처가 되었으며 군위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했
이 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다. 이에 교단 본부에서 1925년 4월에 배문
12일의 일이다. 비안지역의 3. 1운동은 기독 준 전도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섬기게 했다.
교인들이 중심되었다. 평양신학교에 입학하 비안교회는 출발부터 민족과 함께하는 모습
기 위해 평양으로 갔던 김원휘가 서울과 평 을 보여주었다. 박흥섭 장로는 3.1운동에 동
양 등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을 목격하 참했을뿐만 아니라 눈물로 기도하던 분으로
고 고향으로 돌아와 쌍계동교회 박영달, 안 유명하다. 특히 전도대를 조직하여 북으로는
평 괴산동교회 박영화 목사 등과 상의하여 함경도, 남으로는 제주도까지 다니며 복음을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박 증거했다. 천일봉 장로는 농민운동을 통한
영신의 집에서 태극기 200여 장을 제작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1943년 5월 24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독립운동을 주도 일 의성경찰서에 연행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의 발포로 3명이 죽 하였다. 또한 비안교회는 배문준, 한명우, 박
고, 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다수의 군중이 체 석근 목사 등 세 분의 총회장을 배출한 교회
포되었다. 비안교회는 이러한 지역에 1924 이기도 하다. 경상도의 그 어느 지역보다 독
년 설립되었다. 1924년 군위교회에서 비안 립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지역에 위치한 비
면 동부동에 살고 있던 정두영 씨 집 마당에 안교회는 비록 지방의 작은 규모의 교회지만
서 3일 간 전도집회를 열었는데 이때 수십 명 신앙적인 면에서는 큰 기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