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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목포 공생원

                                  목포시 해양대학로 28번길 2   http://jncsw.org/mksw






                    공생원은 1928년에 기독교정신으로 故 윤치           구금 · 고문을 당할 정도로 민족정신이 투철
                    호 전도사가 먹을 것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            한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 기독교는
                    던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시작되            일제탄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정했다.
                    었다. 그 후 한국전쟁 때는 윤치호 전도사와           그러나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경찰에
                    결혼한 일본 여성 윤학자 여사의 희생과 사            연행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는 신앙의 진
                    랑으로 갈 곳 없는 500명의 아이들이 공생원          리와 민족정신을 끝내 지킨 보기 드문 인물
                    에서 함께 생활했다. 공생원은 말 그대로 ‘함          로 평가받고 있다.
                    께 산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약 3,700여 명        목포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김지하 시
                    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라서 사회의 일원이            인, 가수 이난영 등을 고향이 배출한 훌륭한
                    되었다. 두 사람은 공생원에서 아이들을 돌            인물로 꼽는다. 또한 이들과 함께 전쟁 고아
                    보며 예수의 사랑을 일평생 실천했다.               들을 헌신적으로 돌본 윤치호· 윤학자 부부
                    윤 전도사는 일제시대 48차례에 걸쳐 연행 ·          를 목포의 아름다운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윤치호 윤학자 기념비                                          예배당




                                                          “목포 공생원의 역사는
                                                        95년 역사를 가진,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복지시설이며
                                                            기독교 성지이다”
                    목포 어머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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