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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전라도
153 목포 양동교회
목포시 호남로 15
“이 곳은 목포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맨 처음 터”
“박연세 목사는 독립운동가로서
일제에 저항하다가
대구 형무소에서 순교하였다”
목포 양동교회
1897년 봄 미국 남장로교 소속 유진 벨 선교
사와 해리슨 선교사가 나주에서의 선교가 어
렵게 되자 목포로 선교지를 이동했다. 유진
벨 선교사와 해리슨 선교사는 목포에 도착한
선교백칠년 기념비
후 초분 터에 자리를 잡고 목포선교부와 목
포 양동교회를 설립했다.
여기에 오원 선교사가 합세하자 목포진료소
를 개설했다. 1901년 벨 선교사의 부인 로티
선교사가 전주에서 남매를 두고 죽음을 맞이 재판정에서 재판관의 심문에서 “천황이 높으
한다. 양동교회 성도들은 1903년 석조 예배 냐? 하나님이 높으냐?” “예수가 재림하면 천
당을 신축하여 로티 선교사의 죽임이 헛되지 황도 심판을 받느냐?”라는 질문에 “하나님이
않음을 입증했다. 높다”, “천황도 심판을 받는다.”라고 대답했
1940년초 일본의 지배가 거세지면서 일본 다. 박연세 목사는 천황모독죄로 목포, 광주
승리를 기원하는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하자 형무소를 거쳐 대구형무소에서 1944년 2월
이에 굴하지 않고 양동교회 당회장 박연세 동사했다. 양동교회는 1953년 기장과 예장
목사는 ‘약육강식’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 분열시 양동교회 (기장측) , 양동제일교회 (예장 통
자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일경에 체포됐다. 합측) 둘로 분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