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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81
66 공주영명중고등학교
공주시 양명학당2길 33 http://kjym.cnems.kr/main.do
공주영명고등학교 /
개교100주년 기념탑
공주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조병옥 박사,
1903년이다. 의료선교사 맥길 (W. B. Mcgill) 과
유관순 열사 등의 인사가 거쳐간
이용주 전도사에 의해 공주읍교회 (현 공주제일
유서 깊은 사립고등학교.
교회 )가 설립된 것이 출발점이다. 다음해 한국
개신교(감리교) 미션스쿨이다.”
연회는 공주와 진천을 중심으로 한 북충청권
과 청주지역을 묶어 하나의 교구로 설정하고
한국에 온 지 1년 밖에 안 되는 선교사 샤프 영명실수학교로 운영되어오던 영명학교는
(R. A. Sharp) 에게 맡겼다. 그의 부인은 자신보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됐고 1951년
다 2년 먼저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고 있 영명중·고등학교로 복교해 현재에 이르고 있
던 선교사 하몬드 (Alice J. Hammod, 사애리사) 였 다. 유관순 열사와 그녀의 오빠 유우석, 조병
다. 이들 부부는 서울에 상주하면서 충청도 옥 박사, 중앙대학교 설립자인 임영신 등이
지역을 순회하며 1년을 보냈다. 영명학교 출신들이다.
당시 보수적인 문화가 팽배했던 이곳 공주지
역에서는 교육사업이 복음을 전하는데 효과
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샤프 부인은 영명여
학교 설립에 힘을 다하였다. 샤프 선교사에
이어 공주에 파송된 선교사 윌리암스 (F. E. C.
Williams) 는 샤프 부인의 기초 위에 영명학교
를 세우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영명학교는 농촌교회를 위한 실질적인 프로 신교육의 발생지
그램을 운영하면서 농촌지도자 배출에 주력
했다. 이를 위해 영명학교는 교명을 영명실 유관순 열사의 롤모델이 됐던
수 (永明實修) 학교로 개명했다 1932년 4월부터 사애리시 선교사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