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2023서울고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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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등학교로 가는 정동길이 마지막이 됐다.
군대 가기 전, '카니발'이란 괴상망칙한 고등학교 동문 행사가 있었다. 파트너
를 동반하고 모여 노는 행사였는데, 광화문의 추억을 강렬하게 간직하고 있던 선
배들 덕에 장소가 '이딸리아노'라는 정동길 끝자락에 있는 경양식 집으로 정해졌
다. 쌓이지 않고 얌전하게 조금씩 내리는 눈을 맞으며 정동길을 걸었었다.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처음으로 다시 학교 가는 길을 걸었던 셈이다. 급히 수배된
파트너를 덕수궁 앞에서 만나, 돌담길을 따라 쭈~욱 걸어오면서 어색하면 짧은
거리도 무한히 길게 느껴짐을 다시 느꼈다.
첫 직장은 경희궁 바로
옆에 있었다. 원서를 내고
나서 건너편 카페에 혼자 앉
아 경희궁 정문을 보다가 집
으로 왔었다. '90년 말, 다시
그 길을 따라 첫 직장 '제일
기획'으로 걸어갔었다. 무척
추웠고 눈자락이 조금 날리
는 날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 걸었던, 그리고 서초동으
로 이사 가기 전까지 한 학
기동안 걸었던 그 길이 이제
는 '출근길'이 된다는 것이
나름 운명적인 인연으로 생
각됐다. 그리고 그때 그 청
동길'은 그리 길다고 느껴지
지 않았다.
'광화문 연가'를 듣거나 부르면 고등학교 때의 정동길이 떠올랐다. 첫 직장의
출근길이 생각났다. 고 이영훈 선생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광화문', '정동길'을 가
124 _ 서울고 35회 졸업 40주년 기념 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