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차정숙작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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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수한 점들은 다채롭게 변형된다. 터치가 겹쳐질 때도 있고 인접한 점과 맞물릴 때도 있으며 아래 점 위에 덧칠해
질 때도 있다. 상호 관계 속에서, 즉 상응과 긴밀함의 역학 속에서 점화가 완성되어간다. 이렇듯 점과 점이 연결되고 소복
히 쌓이고 엉키면서 조형의 리듬을 얻어가는데 바로 이런 리듬이 화면에 잔잔히 물결 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작가에게 찍는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마치 수양하듯이 자신을 정화하는 과정과 흡
사하다고 한다. 찍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정화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찍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과거
의 회상에 젖기도 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인간의 비극은 어느 한
순간도 골방에 있지 못한다는 파스칼(Pascal)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자기 내면의 잠복을 통해 마음의 안정감과 평화
로움을 얻는 것이다. 자기 성찰은 ‘하나의 삶’이란 점을 감안한다고 본다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더없이 중요한 일일 것
이다. 다른 모든 삶과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돌보지 않거나 뿌리가 뽑히면 병들게 마련이다. 자기를 돌볼 틈조차 없는 현대
인에게 내면의 성찰은 영혼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해 준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전율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이것은 어디서 오는 걸까. 호수 위를 비추는 햇빛의 따
듯함을 느낄 때,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삶의 희열을 느낄 때,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때, 햇
빛에 산란한 나뭇잎의 반짝거림을 볼 때, 마른 잎의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자연
속에서 탐지되는 영원성은 우리에게 계승된다. 작가는 이런 자신의 경험들을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것이 아닐까.
그의 그림은 발랄하고 청청하다. 안에서 분출하는 에너지가 순수하고 영롱한 색깔을 타고 힘찬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숲
의 기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작가는 이렇듯 숲을 통해 감상자에게 희망과 긍정의 힘을 북돋아주고 있다. 그림을 한
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자면 우리의 시선은 실제의 숲이 아닌, 마음 속 어디엔가 자리한 숲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감지 48 내 마음의 노래 Acrylic on Canvas 54.5x33.4cm 2021
할 수 있다. 그것은 순수한 영혼을 만나듯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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