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8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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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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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만난 화가 강구원


         윤재훈(시인) 2007














           남해바다는 화가의 탯줄.
           영랑의 고향을 지나 한참을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청정 바다 고흥, 이제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 나면 낙지
         잡은 배들이 그림처럼 떠서 세상의 근심과, 가을 바다 낭만을 흠뻑 쏟아놓을 것이다.  남양면 월락(月樂)마을,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그런 전형적인 시골, 그 앞으로는 널따란 남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 곳에
         서 화가가 태어나고, 그가 그린 밑그림들도 다 여기에서 연유한다.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그래도 비교적 살만했으며, 교육열이 강한 아버지께서는 새 것이
         나오면 가장 먼저 사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 시절이야 어디 화가의 일상만이 그리 고단했겠는가마
         는 도서관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학교 사정들은 열악했다. 그래서 도서관과 교실을 같이 쓰기로 했는데, 마침 화
         가의 교실이 도서관과 겸용하게 되었고 담임이신 <이천만>선생님께서 ‘도서대출 담당’을 시켜주었다. 그때 도
         서관에는 약 350여권 정도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화가는 300권 이상은 읽었을 것 같다고 한다. 한마디
         로 동화책이던 위인전이던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이다. 지금 회상해 보면 화가는 그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많
         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그 후 유학길에 올라 그래도 인근에서는 제법 큰 도시인 순천 삼산중으로
         진학하였고 화가는 여기에서 자기 인생에 한 전환점을 제시해준 선생님(미술: 이상호, 국어과 시인: 장효문)과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그리고 미술과 각종 서예대회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서울 구경도 하였다고 한다. 서라벌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고2 겨울 마지막 수업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때 목사이신 독일어(박구연)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한 장의 그림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는데 그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 당시에야 이발소에 가면 가장 흔하게, 걸려있던 그림이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밀레의 <만종>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정적 해석은 여태까지 그가 한 번도 들
         어본 적이 없던 충격이었다. 해 저물녘 잔잔하고 정돈된 놀빛 아래, 가을 이삭처럼 겸손하게 들판에 서서 고개
         숙인 부부의 모습은, 그 후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좌표가 되었다.


           그리고 화가로서 그림을 평생의 업(業)으로 결정한 것은 군대생활에서였다. 고등학교때부터 읽었던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리며 보초를 서다보면 만가지 생각이 지나가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면 그것도 잠시 더 이상 생각거리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림 그리는 일 뿐이더라는 것이다. 휴가중 우
         연히 서울 종로 5가 근처에 있는 철학관에 들렀는데 단번에 그 할아버지는 그림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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