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1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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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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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전도된 시대
화가는 원시적인 몸과 마음을 중요시한다. 가치가 전도된 이 세계에서 물질에 대한 지나친 숭배는 사람들
을 더욱 숨 막히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림 한 장을 그릴 때에도, 옛 사람들이 탑 돌을 쌓아 올리듯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은 너무 급하다.>고 우려한다. 급해도 너무 급하다고.
하루에도 수천 킬로미터는 우습게 이동할 수 있고, 더구나 셀 수도 없는 거리에서 보내온 우주선에서의 자료
들은 자칫 인간들은 너무나 오만하게 만들고 있다고. 사실 <우리는 변해 있다.>. 옛날의 산은 그 자리에서
그 나무들을 그대로 품고 있는데. 강줄기들은 여태까지 시원한 물줄기로 우리의 가슴팍 같은 대지에 시원스
레 적시고 있는데, 사람들만 카멜레온처럼 변해서 소란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화가는 순간의 감흥을 매우
중요시 한다. 그 하나하나의 미세한 현(絃)의 떨림 같은 마음 속의 미풍들을, 교감을 통해 낳는다고 한다. 그
리고 나와 캠버스와의 진실한 만남, 거기에 만물이 교응할 때 비로소 붓을 든다고 한다. 때로는 순간순간 작
은 밑그림들을 그려나가다가, 거기에서 어떤 느낌이 들면 대작으로 옮기기도 한다. 또한 그림의 밑바탕을 매
우 중요시한다. 가능한 밑바탕을 정성들여 칠하고 전체적인 화면으로 붓을 옮겨간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거기에서 역사의 덮개를 스스로 들쳐 낼 수 있게 된단다. 수백 년 된 초가집의 마루바닥을 뜯어와 붙인다거
나, 오래된 장롱들을 붙여 그 역동성을 더한다. 끝없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그런 까닭에 화가는 그림에
나타난 대상에 대한 관심이나 그 의미에 천착하기 보다는, 그림에서의 성정을 더 중요시 한다.
그림의 마무리를 할 때도 특별하다. 오랫동안 그 작품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체감에 느껴질 때 마지막 붓터
치를 한다. 그리고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심정으로 그림과 그림의 구획이 모두 무너지는 순간, 어떤 초월적
인 경지를 기대하며 마지막 붓을 놓는다고 한다. 단순한 재현의 방식에서 탈피해 최소한의 조형언어로 탈
바꿈해 가는 그의 작업은 공간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의식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지천명(知天命)의
능선에 한 발 재겨딛은 화가의 붓의 광기는 황괴벽담(荒怪僻談)의 그것처럼, 거칠거나 공격적이지 않다. 가
을 바람에 묻어나오는 서정시 한 자락처럼, 조화로운 자연의 정서가 물씬 풍겨 나온다. 여기서 하나 더 묻어
나오는 징후가 자연과의 교감이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거처를 옮긴 것도 꼭 나이 탓만이 아니라, 그의 이
런 심성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즉 그가 추구하는 자연은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원초, 자연>으로 저 무한
의 사나이 노자가 주장했던 <도가도 비가도(道可道 非可道)>의 사상에 한 발 다가가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그의 관심의 대상이 폐사장에 방기되어 있는 돌덩어리에 가 있다. 자연의 원초 모습
을 파괴해버린ㆍ그리고 파괴당한 양쪽의 스산한 대립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그는 다가갈 수 없는 자
연과 인간의 더 먼거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것이 더욱 그가 거기에서 붓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
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그의 관심은 더욱 확장되어 탑으로까지 닿아있다. <느림의 미학>으로 오직 한
땀 두 땀 인간들의 정성으로만 닿을 수 있는, 그런 교감 없이는 쌓을 수 없는 탑에 가 있다. 수천 년을 돌아 나
오고도 아무런 외침 없이 교교하게, 또는 묵묵하게 서 있는 그 탑에 요즘 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중 이다.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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