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0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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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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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지 한 달이 지나도 모르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매정하다>. 우리
는 언제부턴가 내 앞, 내 가족, 그 이상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近視眼)으로 변해 버렸다. 이런 맥락 속에서 그의
그림이 지향하는 바는 참으로 소중하다. 그림으로 이 사회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자유로움을 주고자 하는 그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가에게는 특별한 종교도 없는 듯 하다. 아니 만물을 다 종교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처처불
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이 아닌가. 사는 곳마다 곳곳에 불상이요, 행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듯 경
배한다면 미치치 않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미치면 미친다.(不狂不及)>은 옛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더욱 가
깝게 느껴온다. 또한 인간은 생태적으로 나약한 존재로 태어났으니, 그림 속에 어떤 종교성도 포함되어 있어
야 한다고 한다. 사실 <모든 인간은, 그의 배면에 종교성을 깔고 태어난다.>. 그리고 종교성이 없는 명화가 어
디에 있으며, 종교성이 없는데 좋은 예술 작품이 된 경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바람이 눈 앞에서
어른거리나 싶더니
솔방울 하나
툭, 하고
소 등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소 길길이 뛰더니
산문으로 들어가
십우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흰 소를 찾아서/윤 재 훈
<신은 죽었다>고 외치던 니체나 칼 막스 등도 종교를 강하게 부정했지만, 실은 더 깊이 경도되어 있었던 것
은 아닐까? 이런 정신들이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의 정신>으로까지 그 선이 깊게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 이제 그의 그림은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강한 대비의 색감 처리들이 더욱 돋보인다. 사람의 경우에
도 검은 선으로 윤곽이 잡혀있으나 얼굴은 거의 평면에 가깝다. 이어서 나무통 같은 물건과 고추 등이 나타나
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 그는 동양적인 문제와 음양오행(陰陽五行). 기(氣) .성(性)의 본질적인 문제에 깊이 경
도 되고 있었던 것 같다. 물감의 사용도 유화에 그치지 않고 아크릴이나 금가루, 나무 헝겊, 동판 등 더욱 강
렬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으며, 두드러진 붓자국은 이미 그 자체가 회화적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화가는 그
해 10월 관훈 미술관에서 다시 <우연의 지배-한국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여는데, 여기에서는 우연
의 요소를 더욱 박진감 있게 구사하고 있다. 색들은 더욱 강렬해지고 대담해졌으며 오채가 도입되고, 이때부
터 흰색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심상치 않다. 은유도 더욱 구체적인 심상으로 나타나는데, 여성을 상징하는
‘샘’과 남성을 상징하는 ‘고추’ 등이 이채롭다. 성의 원색적인 순수가 잡다한 문명의 번쇄) 을 잘라버리기라도
할 듯 사뭇 저돌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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