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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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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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80년, 3월에 제대를 하고 광주에 계시는 <진원장>선생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1년간만 학비를 부탁하고 북아현동 굴레방다리 근처에서 작업하고 계셨던 <이청운>선
생님을 만났는데, 제자라고는 자기를 포함해 달랑 2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화가는 여기에서 그림의 진짜 스
승을 만났고 “예술은 혼자 하는 거야”라는 말씀을 되내이시며 항상 술에 절여 계신 선생님이셨지만, 제자들의
그림을 아끼며 절대 손을 대지 않으시면서 “스승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이다.”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다는 것이다. 그 시절 선생님도 가장 가난한 시기였으나 정이 넘치는 휴머니스트였으며 지금은 가족처럼 마
음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화가는 동국대 미대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나는
데 그 분은 예리한 지성과 우주를 사색하는 <오경환> 교수였다.
‘우연’의 화가.
화가는 지금 포천의 이곡리에 살고 있다. 도로를 따라가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접어들어 한참을 따라 올라가는
데, 그는 그곳에서 수수이삭처럼 한가하게, 때로는 소국(小菊)처럼 흔들리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민락중학교에 계약직 미술선생님으로 나가고 있으니 시간은 약간 빠듯하겠지만 말이다. 화가의 작
품 성향을 보면 초기에는 회화적인 것에서 선적(禪的)인 것으로 옮겨가는가 싶더니, 다시 회화적으로 옮겨오고
있다. 그가 사는 생활 자체가 회화적이고, 또한 선적이니 당연한 귀결일 테지만 말이다. 지금쯤 누렇게 벼가 익어
가는 농로를 따라 그의 집을 찾아가다 보면, 누런 호박들은 익을 데로 익어 세월의 무게를 고아하게 품고 있으며,
고추잠자리들은 지천으로 떠서 나그네의 눈길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런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요즘 흔히
만나기 어려운 비포장길이 나오고, 순한 소처럼 엎드려있는 그의 작업실을 만날 수 있다.
화가가 89년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 때 가진 레퀴엠(requiem) 주제전은 데포르메적 분위기를 풍기는 구상
화 위주였다. 굵은 윤곽선 속에 촉각적인 유도를 통해 조형상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과 색감
적인 면을 따라가다 보면 ‘놀데’의 그림에 나타난 스산함의 풍경이 나타나고, 또한 ‘루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 고발성과의 어떤 일체감, 그런 맥락들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더욱 대담해지기 시작하는 91년도의 두
번째 개인전부터는 <우연의 지배(Incidental dominion in life)-생명>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테마로 꾸준하게 그
방향성을 잡고 있다. 여기에서 화가가 생각하는 <우연은 필연이다.> 즉 사전적인 의미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
다. 모든 것은 섭리에 의해 만남을 지속하므로 그것들은 그것들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허상에 매어있으므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우연>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수희의 노래가사
처럼 <예정된 시간 속에 우리는 만난다.>는 명제가 새삼 신선하게 다가온다. 즉 화가의 핵심적인 사유의 방식은
<미결정 상태의 필연>, 즉 <우연은 반드시 필연을 동반>한다는 방정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관념적인 우연
이기 보다는 이미 필연을 상정한 우연이다.
이런 그의 주장 역시 자못 선적 이면서 정적(靜寂)이다. 그러나 꼭 화가의 주장만은 아니더라도 기실, 우리가 만
나는 이 세상의 많은 인연들이 어디 그냥 우연히 지나가는 것이 있겠는가? 사실 그것은 많은 은유와 상징을 내포
하고 있으며, 어떤 상동성(相同性)에 의해 우리는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경전에서도 보면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의 인연은 일 겁의 인연을 뜻한다. 그 일 겁이란 하늘나라의 선
녀가 이 세상에 내려와 옷깃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구원의 시간
이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얼마나 바쁜가?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그림자도 남기지 않고>사라지는 투명인간 같
다. 사실 지나고 나면 별일도 아닌 것이 훨씬 더 많은데, 꼭 그 때 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모
두의 일감 광주리는 항상 넘쳐나고 있다. 타자(他者)에 대해서는 신경 쓸 여가가 없다. 그래서 이 시대에 많은 사
람들은 진정으로 마음이 따뜻한 예술가의 도래를 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절이 힘들고 수상할수록 예
술의 힘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힘듬을 보고도 못 본척 고개 돌려 버리는 이 시대. 앞집 할머니가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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