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2022강화산-존재의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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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기 마련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러한 말이 아니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우연
        의 개입으로 인해 역사의 큰 흐름이 바뀐 많은 예들은 물론이려니와 개인사에도 그러
        한 사례가 흔히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때로는 치밀하고 정밀한 계산이 그보다도
        강하게 우연성과 짝을 이루어 역사의 흐름에 관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우연성마저
        도 치밀한 계산에 포섭되어 뜻하지 않게도 더 높은 차원으로 역사에 이바지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우연적 필연으로 작용한 셈이다. 예기치 않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예술을 통해 우연을 길들이는 의미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며, 이로 인한 예술
                                                                                   우연의 지배- 고기잡이를 위한 씻김
        적 풍요로움을 통해 삶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더욱더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ncidental in Life-Fishing
                                                                                   이불 홋창위에 아크릴
                                                                                   227.7x136.6cm,  1995
        3.
         강구원 작품이 지향하는 주제를 압축한 2017년에 화산 그림창고 출판사에서 내놓
        은 책자인 침잠과 울림의 미학에서 두드러진다. ‘침잠과 울림’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작가의 미학적 성찰을 위해 서로 직조된다. 강구원은 생명에 대한 경외와 자연에 대
        한 사랑을 기조로 하여’우연의 지배’라는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소재로는 캔버
        스 위에 아크릴, 노끈, 철선, 실, 리벳, 연필, 대추나무, 성경책, 헌책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우연을 엮어낸다. 35년여에 걸친 주요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89년
        첫 개인전 주제인 ‘레퀴엠’은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고 안식을 기원하는 것으로 그
        무렵 시대적 분위기를 적절하게 표현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레퀴엠>
        (1987-1989) 연작을 시작으로 90년대 들어서 ‘우연의 지배’라는 작품의 경향을 띠며
        차츰 추상성이 강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우연의 지배-나의 모습> (1996), <우연
        의 지배-생명>(1998), <우연의 지배-사원의 뜰에서> (2002), <우연의 지배-섬, 사라
        지는 것들에 대하여> (2004), <우연의 지배-분단의 현실> (2004), <우연의 지배-고
        요와 울림> (2007-2011) 연작, <우연의 지배-마음으로 세우는 탑>(2005-2015) 연
        작, <포도밭에서> (2013), <우연의 지배-레퀴엠> (2014) 연작, <우연의 지배-생물을
        위하여- (2014), <우연의 지배-생물과 무생물을 위하여> (2014), <우연의 지배-생
        물과의 소통> (2014), <우연의 지배 선물> (2016-2017) 연작, <셰익스피어 소네트-
        선물》 (2017) 연작, <우연의 지배-포도밭에서> (2021) 연작, <우연의 지배-소네트
        (2020-2021) 연작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연의 지배’에 따른 소주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우연을 필연적 질서로 편입시킨다. 작가가 우연의 지배와 포도나무를 연관
        짓는 시도는 매우 각별하다. 작가는 몇 해 전 미국 캘리포니아 포도원 지역의 여행을
        통해 포도밭 연작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지금도 작업 중인 국립 수목원 근처의 포도
        밭과도 연계하여 종교성을 포도나무의 선(線)속에서 표현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고
        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포도나무는 ‘생명의 풀’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포도나무
        는 이스라엘의 영적 특권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 식물이 되었다.                               Incidental in Life-Stupa erected by the
                                                                                   mind, Acrylic on canvas, 244x162cm, 2005
        중요한 건물의 모자이크 바닥 장식이나 회당의 정문, 묘비석 등에 새겨져 있으며, 성
        경의 많은 비유나 은유적 표현들은 포도나무나 포도 열매 혹은 포도주 등과 관련되
        어 있기도 하다. 포도나무의 덩굴이 얼기설기 뻗어나간 모습에서 작가는 선(線)의 의
        미를 묻는다. 선(線)은 생명이 펼치는 방향성과 에너지를 나타내며, 포도라는 열매에
        서 희망과 기다림, 그리고 성취감을 본다. 또한 ‘마음으로 세우는 탑’은 영원히 쓰러
        지지 않는 불멸의 탑이며,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시대의 화두이다. 참된 진리는
        참된 마음에 있는 까닭이다. 작가가 승보사찰인 송광사 방문에서 그 의미를 새기며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7)

          우연의 문제를 주제로 내걸고 작업을 하는 작가 강구원은 개인전“우연의 지배-소네
        트”전(2020.08.05.-11, G&J 광주·전남갤러리)을 열어 시선을 끈 바 있다. 그리고 “천                   Incidental in Life-Fishing, Acrylic on canvas
                                                                                   180x100cm, 2005
        상의 소리, 존재의 공명”전(2021.12.22.-28, 포천문화재단 갤러리)에서 우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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