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2022강화산-존재의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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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질서와 조화: 화산 강구원의 작품세계
김 광 명(숭실대 명예교수, 미학/예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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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구원을 가까이 아는 지인들은 화가로서 그가 지닌 지적인 면모와 인성에 감
동한다. 특히 조용하고 부드러운 심성과 언행의 진중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필자의
생각에 이런 작가의 품성과 태도가 작품으로 연결되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화산
강구원의 작품 세계 1)를 좀 더 가까이 천착해보고 싶은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
으나 이런저런 일로 틈을 내지 못하고 늘 과제로 미루어 온 터였다. 근자에 「예술에
서의 ‘우연’의 문제와 의미, 2)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때가 성숙하여 이제 비로
소 필자의 글로 작가 강구원의 작품을 접하게 되니 필자로선 감회가 새롭다. 글과 작
품이 서로 환류(피드백)되어 더 나은 차원의 작품 세계로 고양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진정한 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는 철학적 탐구의 목표이며, 동시에 예술의 목표이기
도 하다. 이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담보해주는 까닭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
재’이다. 작가 강구원은 평소에 “그림그리기는 의미를 만드는 일이고, 감상하는 것은
그 의미를 읽어내 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와 평자 혹은 감상자는 작품을 매개로 의
미를 공유하며 소통을 꾀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작품에 담긴 의미를 새겨보는
일은 작가의 성(姓)과 호(號)를 합해 부르는‘강화산’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Requiem, 116 x91cm, Oil on Canvas,
작가의 호는 본명 이외에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세상에 널리 드러난 이 162.2x130.3cm,1989
름이다. 한자로는 좀 어의가 다르긴 하지만, 작가 자신도 이를 강과 산의 조화, 즉’강
화산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강과 산은 자연의 대명사로서 부분적으로 보면, 그 흐름
과 형세가 제각각이고 마치 우연의 산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멋진 풍광을 자아내고 생명을 유지해가는 필연적인 산물이 된다. 무엇
보다도 작가 강구원은 자연과 생명의 이면에서 우연의 현상이 지배적임을 터득했음
이다. 자연과 생명에 우연이 어떻게 나타나며 개입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일이
작가의 작품 세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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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미시세계에서 우연히 발생하면서 출현한다. 그러나 일단 발생한 생명현상의
진행은 변이(變異)를 거듭하면서 필연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변이(變異)란 ‘예상하
지 못한 사태나 괴이한 변고’로서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종 또는 하나의 번식 집단 내
에서 개체 간에 혹은 종(種)의 무리 사이에서 나타나는 형질의 차이’이며, 그 요인에
따라 유전변이나 환경변이 등으로 나뉜다. 그러니까 유전에 의하든 환경에 의하든 예
상하지 못한 사태로서의 우연적 변이는 일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우연성이 지닌, 우
연성 안에 내장된 필연적 관점은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의 합목적성과도 연관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연적 필연이란 합목적성의 산물이다.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의도하
지 않은 우연한 발견, 혹은 운 좋게 발견한 데서 얻은 뜻밖의 재미나 기쁨’이 작품으
로 형상화된 경우를 보며 즐긴다. 다양한 삶의 형식을 담아 표현하는 예술의 경우에
작동하는 심미적 마음의 회로(回路)는 복잡성과 인연성으로 가득 찬 환경 속에서 각
개체가 환경에 합당한 창조를 수행하며, 생태학적 조화를 도모하는 삶의 원리로 작동
한다. 그것은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를 예술 안에 담는 일이며, 목적에 부합하는 미적 Raindrop-Yearning, Oil on canvas
145.5x112.1cm, 1990
즐거움을 향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