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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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행안면 이야기➊                행안을 이해하는 열쇳말 중 하나는 ‘행안은 바닷가였다’는 사실이
                                          다. 청동기 시대에는 행안산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봐도 좋

                                          을 것이다. 행안산 주변의 마을들은 일찍이 바다에서 벗어나서 농
                                          사를 짓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궁안 삼간평은 19세기에
                                          와서야 바다를 막아 농사짓기가 가능했다. 이곳 삼간평의 강참봉
                                          (강봉수)은 천석궁으로 알려졌는데 갯벌을 막아서 60여만 평의 농

            지를 조성한 사람으로 수십 명의 머슴을 두고 경작했으며 염벌을 19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뚝들은 해일로 자주 무너져서 바닷물이 들어오면 농사를 실패하기 마련이었다. 궁안과 삼간
            평은 원래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이었다. 소금 흙을 모아서 좀더 높게 염벌을 만드는데 높은 곳
            이다 보니 바닷물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높은 염벌에 오두막을 지어 살다가 차츰 바닷물을 막아서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본문  중에서)















           행안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정재철 부안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

















                                                              염소방과 서도방, 남상방과 남하방의 4개 면방을 중심
            행안산은 어디인가                                         으로 행안면이 편성되었다. 이 행안면이란 지명은 행

                                                              안산(幸安山)에서 온 이름이다.
              행안면(幸安面)은 1914년 이전에는 없었던 지명이                      그렇다면 행안산은 어디일까? 중종 25년(1530년)
            다. 일제의 병탄 이후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안현 편의 산천(山川)





        010   부안이야기·2018년/겨울/통권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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