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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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전지훈련 등을 실시한 결과 선수들은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고 기량도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러나 전북대표 선발전에서 이리 중앙초에게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결승에서 3:3까지 갔으나 마
                  지막 선수가 탁구를 늦게 시작한 4학년으로 신체적 조건의 불리함과 실력 부족으로 결승에서 패배

                  하여 준우승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아니 순서 조정만 잘 했어도 가능했는데…….

                  유천초등학교 에이스 2명만이 이리 중앙초와 연합하여 1994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 전
                  북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유천초의 소년체전과의 인연은 결승 때마다 처음에는 이리 중앙초, 다음

                  에는 군산 대야초의 장벽에 가로 막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전북의 2인자로만 남아야 했

                  다. 하지만 나의 욕심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듯이 전북탁구협회장배 초등여자부에서 우승을 하였
                  다. 그러나 진정한 목표는 아니었기에 즐거움보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학교 운영위원들의 도움으로

                  영전 사거리에 전북협회장배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자랑스럽
                  기보다는 씁쓸함이 밀려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운동을 힘들어 하는 육상 및 탁구선수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지금은 반성이 되고 그

                  런 학생들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밀려온다. 육상선수와 탁구
                  선수로 활동하였던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30대 중후반의 성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잘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유천초등학교 옛터를 수없이 바라보며



                  나는 고향집이 진서면이기 때문에 보안면 영전 사거리를 거쳐 곰소 방향의 30번 국도를 통해 유천

                  초등학교 옛터를 수없이 바라보며 다녔다. 그때의 넓은 운동장과 2층 건물이 지금은 청자박물관과

                  주차장으로 변해버렸지만 그 당시에 운동장을 힘차게 달리며 연습하던 육상선수, 고사리 손으로 라
                  켓 휘두르며 땀 흘리던 탁구선수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는 유천도요 공장에서 솔솔 피어오

                  르는 연기만이 그 시절 유천초등학교의 추억을 생각하며 오고가는 내 마음을 달래줄 뿐이다.
















                 청자박물관이 들어선 유천초 옛터
                                                    부안초에서 열린 육상대회
                                                                                       유천초등학교 가을운동회(198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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