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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농업기술발전과 영농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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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량작물 재배실태
산업
조선초기의 인구는 약 4백~5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1492년에는 7백50만 명, 1592년경에는 1천 · 경제
12만 명으로 추정한다, 인구성장률은 0.15~0.20%로 추정하고 있으며, 조선전기 인구 중 농민은 약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보건
1690년경의 조선의 계급구성을 보면 양반호가 9.2%, 평민호가 53.7%, 노비호가 37.1%로 구성되어 · 환경위생
있었다. 양반호의 계속적인 증가와 노비호의 감소 경향을 볼 때 초기에는 노비호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조선전기에는 노비가 적어도 40~50% 이상으로 조선전기 농업노동의 상당 부분 · 사회복지
이 노비에 의해 이루어져 왔으며, 조선전기에 가장 널리 재배되었던 작물은 기장 286군현, 콩 282군
현, 벼 278군현 그 다음으로 맥류, 피, 마 등이었다. / 사법
표 7. 조선시대의 토지와 인구 · 치안
연도 토지결수 (천결) 추정면적 (천 정보) 추정인구 (천명) 추정면적 대비 추정인구 · 소방
1550 1,516(100) 4,337(100) 9,503(100) 2.19(100)
1650 1,378(90.9) 3,783(87.2) 9,020(94.9) 2.38(108.7) · 언론
1725 1,320(87.1) 3,712(85.6) 12,130(127.6) 3.27(149.3)
1775 1,445(95.3) 4,259(98.2) 14,093(148.30 3.31(151.1)
1825 1,445(95.3) 4,148(96.6) 15,277(160.8) 3.68(168.0)
1875 1,487(98.1) 4,325(99.7) 15,884(167.1) 3.67(167.6)
주: ( )는 1550년을 100으로 하여 만든 지수임
〈자료 : 수원시사, 1986〉
조선시대의 토지와 인구를 추계한 〈표 7〉를 보면 이 시기는 토지면적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인
구는 약 325년 동안에 68%나 크게 증가하였다. 인구 1인당 식량소비 수준이 동일하였다고 가정할 때
이러한 인구 증가는 곧바로 단위면적당 농업생산력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 시대의 농업은 일차적으
로 넓은 토지를 비교적 적은 인구가 경작하였던 노동생산성 중심의 조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조
선전기의 농업은 넓은 토지 위에 부족한 노동력이 결합한 노동절약적이고 토지집약적 성격의 것이었
으며, 축력을 풍부하게 구사하는 노동생산력 중심의 대경영에 유리한 것이었다. 특히 조선전기의 벼
농사는 전체농업의 20% 내외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수리불안정한 열등지에 늦벼를 수전직
파법(水田直播法)으로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밭의 파종법도 마전(摩田)이 불충분한 곳
에서 노동능률이 높다는 점에서 조파법(条播法)을 널리 활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호미까지 노동생산
성을 높이기 위해서 긴 자루의 것이 일반적이었고 제초횟수도 많지 않았다. 조선전기 농구들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쟁기는 바로 파종구 작성을 위해 볏이 없이 얕게 가는 쟁기였으며 쟁기횟수에 있어
서도 조방적인 모습이 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