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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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적지의 지리적 위치 및 범위


                                   3)
                         오산 죽미령 의 위치는 행정구역상
                       경기도 오산시 경기대로 742(외삼미
                       동600-2) 일원이다. 죽미령 전투 전

                       적지의 범위는 보병이 진지를 구축했
                       던 현재의 외삼미동 및 내삼미동 일부
                       와 포병이 진지를 구축했던 수청동 일

                       원을 포함한다(그림 2). 현재는 개발로
                       인해 변화된 지형이지만, 전쟁 당시 보

                       병이 배치되었던 세 곳은 하나의 능선
                       을 이루었다. 죽미령은 이 능선 사이의
                       작은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을 따라 이

                       어지는 길이 1번국도이며, 1950년 이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폭을 달리
                       하며 계속 사용되고 있다.

                         보병이 진지를 구축한 세 곳은 1번
                                              4)
                       국도 동쪽의 반월봉(117M)  북사면,             <그림 2> 오산 죽미령 전투 상황도(Roy E. Appleman, 1986. p.67 수정 후 인용)
                       국도 서쪽의 99고지, 그리고 반월봉 동쪽의 92고지를 포함한 남동쪽 구릉이다. 반월봉에는 B중
                       대의 2개 소대, 99고지에는 B중대의 1개 소대, 92고지에는 C중대 2개 소대를 배치하였다. 그리
                                                                 5)
                       고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는 반월봉 남쪽 낮은 구릉 에 C중대 1개 소대를 배치하였다. 포병은 보



                       3)  ‘죽미’는 예로부터 중미(中美), 죽밑, 혹은 죽밋이라고도 불렀다. 마을에 예전에 대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 하며 1863년에 발
                         간된 『대동지지』에 중미현으로 나오고 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는 문시면에 죽담점(竹潭店)으로 표기, 1914년 4월 1일에는
                         문시면 죽미(竹美)로 표기하였다. 죽담점에 ‘연못 담(潭)’자를 썼음을 볼 때 죽미란 방죽미(물)에서 앞 자인 ‘방’자가 생략된 지
                         명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이천시 부발읍 죽담 1리의 속칭이 ‘죽골’인데 이는 ‘방죽골’에서 ‘방’자가 생략되어 부르던
                         데에서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죽미령’은 ‘죽밋고개’를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다. 烏山市, 『烏山市史 下』 (경기출판사, 1998),
                         p.740. 오산시사편찬위원회, 『오산시사1』 (북멘토, 2009), p.356.
                       4)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봉, 달 보던 곳이라 하여 달봉재, 또는 능산, 능선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烏山市, 앞의 책,
                         p.741). 높이는 지도마다 113m, 117m, 118m 등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본고에서는 전투 상황도의 높이를 인용하였다.
                       5)  1975년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능골’이라는 명칭이 쓰여 있다. ‘능곡’이라고도 한다.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나 능이 있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사도세자의 묘인 융릉의 능산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며, 또한 예전에 이 마을에 능참봉이 살아
                         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烏山市, 앞의 책, p.740).


                                                                 오산 죽미령 전투와 전후(戰後)의 스미스 부대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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