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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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포병은 평택역이 폭발로 파괴되어 성환역에 하차
                               08:00    포병은 성환역에서 육로로 평택에 도착하여 스미스 부대와 합류

                                        스미스는 평택과 안성의 두 부대를 평택에 집결시킴
                        7. 4.
                                        스미스와 페리 및 참모장교들은 오산진지 마지막 정찰, 페리 중령은 포병진지
                                오후
                                        계획, 딘 소장으로부터 죽미령에 진지를 설치하라는 명령 받음
                                24:00   보병과 포병 이동 시작(스미스는 한국인들의 트럭을 징발, 다양한 차량에 대원들을 태움)
                                         11)
                      <표 2> 이동 및 전투 준비과정



















                      <그림 6> 이타즈케 비행장에서 수송기에 오르는 모습(7. 1.)     <그림 7>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7. 2. AP통신촬영)




                      3. 전투 수행 및 완료(1950. 7. 5.)         12)



                        7월 5일 새벽 3시경 오산 죽미령에 도착한 540명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미리 지정해놓은 진지에 진입하여 참호를 파고 화기를 배치하는 등 방어준비를 하였다. 스미스

                      부대는 도로와 철로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전술하였듯이 현재의 1번 국도를 중심으로 동
                      쪽 반월봉 북사면에 B중대 2개 소대, 도로 건너편의 99고지에 B중대 1개 소대, 반월봉 동쪽 92
                      고지 및 후방의 낮은 구릉에 C중대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2문의 4.2인치 박격포는 117고지 후

                      방 400m 지점에 진지를 선정하였다. B중대는 적 전차의 접근이 예상되는 1번 도로변에 배치하
                      였고 C중대도 전차 사격이 가능한 곳에 배치하였으며 2.36인치 로켓도 전차 접근로에 배치하였






                      11)   현재는 북쪽 수원방향으로 높은 건물들이 있어 가시권이 넓지 않지만, 1950년 당시에는 수원 방향이 훤히 보여 진지 구축지
                        점으로 죽미령을 선택하였다.
                      12) Roy E. Appleman, 앞의 책, p.68-75. 國防軍史硏究所, 앞의 책, p.30-48.



                      128  심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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