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오산문화총서 3집
P. 135
16)
대원 중에도 14여명이 7월 5일 전투에서 생존했지만 이후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포로로 이송된 그룹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송환, 포로생활 중 사망한 그룹으로 구분된다.
송환날짜를 보면 계급이 낮은 병사부터 우선적으로 송환되었고 장교는 이후에 송환되었다. 포
로 중 사망한 경우는 다시 2가지로 구분된다. 즉 시신을 수습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시신을 수습한 경우는 신원을 확인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세분된다. 참전용사들의 증언
에 따르면 북한군 관리 하에서 포로생활 중 사망한 사람은 시신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
고, 중공군 치하에서 사망한 사람은 시신을 돌려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시신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에는 함께 포로생활을 했던 전우들의 증언 및 각종 기록물을 통해 신원확인이 가능하
다. 특히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운데 웨인 존슨(Wayne Johnson)이 포로생활 중 북한군 몰래 함
께 포로생활을 했던 참전자들의 고향, 소속부대, 계급, 이름을 적어온 이야기는 유명하다(Tiger
Survivors List).
죽미령 전투에서 실종하거나
전사한 사람은 이후 오산지역
을 다시 탈환했을 당시 시신을
수습하였다. 하지만 8명은 현
재까지도 수습하지 못했고 실
종상태로 남아있다. 참전자 중
B중대 해롤드 존슨(Johnson
Harold A.)의 유해가 1960년
대 인근의 공사과정에서 발견
<그림 9> 戰後의 스미스 부대원 분류도
되기도 하였다.
2. 유엔군 구(舊)·신(新) 초전(初戰) 기념비
오산 죽미령에는 유엔군의 첫 전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2개 있다. 먼저 건립된 것을 구) 유
엔군 초전 기념비, 이후에 건립된 것을 신) 유엔군 초전 기념비라 부른다. 줄여서 각각 ‘구초전
비’, ‘신초전비’라 부르기도 한다.
16) 미국 내 참전용사 검색 사이트인 www.koreanwar.org 에서 검색한 결과이다.
오산 죽미령 전투와 전후(戰後)의 스미스 부대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