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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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설이 전해오는 금암동은 크고 좋은 바위가 많은 곳이어서 금암동이라 불리는
곳으로 우리들에게는 고인돌로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전설에 나오는 바위는
여계산 중턱으로 여계산은 해발 159m의 높지 않은 산으로서 금암동, 지곶동, 세교
동의 오산 내 3개 동 중앙에 걸쳐 있는 산이다. 또 여계산은 조선 선조 때 이괄 장
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군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동에서 서랑동으로 넘어
가는 배무니 고개에서 시작된 가서천의 두 번째 물줄기는 예전에 세조대왕이 마셨
다는 찬우물(어정御井)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조는 몸에 종기가 나 온양으로
온천욕을 하러 배나무길을 지나다가 이곳에 멈춰 목을 축이는데 물이 차고 맛이 좋
아 '찬우물'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또한 샘물 관리를 위해 근처의 농토에서는 세금
을 받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고도 전해진다. 그곳에는 샘물은 없고 논 가장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가장동산업단지에 수용돼 없어졌
다. 애기바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서랑저수지가 내려 보인다.
★ 선바위 전설
노적봉이라고 하며, 노적산 정상 근처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아름답게 생겼고 모
양이 세워놓은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는 마등산으로 통일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등산 : 2004년 9월에 오산시문화공보담당관실에서
구성한 지명위원회에서 말등산, 노적산, 학교산, 배꼽산, 달맞이산, 선바위산 등 여
러 이름으로 불리던 산을 ‘마등산’이라는 하나의 산 이름으로 통일 결정함.)
옛날에 이 마을에 소금장수가 살았는데 지금의 원 2동인 밀머리에서 배가 들어왔
다고 한다. 소금장수는 인천에서 소금을 사서 배로 밀머리까지 싣고 와서 팔았다고
한다. 당시에 마땅한 이름이 없던 소금장수는 오산의 선바위라고 자신을 말하곤 했
다. 그런데 인천의 구두쇠 상인이 어찌나 짜게 구는지 한번 혼을 내주기로 마음을
먹고 소금 세 배를 싣고 오면서 대금은 다음에 주기로 약속하고는 오산으로 와서
소금 대금을 보내지 않았다.
인천의 구두쇠 상인은 외상값을 가져올 것을 기다리다가 지쳐 화가 나서 오산까
지 찾아오게 되었다. 길을 물어 오산까지 찾아온 인천의 상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오산의 선바위를 물으니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 찾느냐고 되물으니, 인천 상인이 소
금 세 배 값을 받으러 왔다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며 저 산의 정상에 있는 바위
가 선바위라고 하였다. 인천의 구두쇠 상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선바위만 쳐
다보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근동에서 이곳 선바위는 소금 세 배를 삼킨
바위로 이름이 났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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