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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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산(烏山)의 지명 유래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이 문헌상에서 확인되는 것은 고려 원종 1년(1260년) 때가
처음으로서,『고려사』에 기록된 “속리대가 을유년에 오산(烏山)에 퇴둔하였다.”는
기록으로 고려왕과 몽골 장수 속리대가 개경과 강화도를 오가면서 몽장 속리대가
주둔하였다는 내용으로 이 고려 원종 때의 오산(烏山)이 현재 우리가 사는 오산(烏
山)인지는 확정할 순 없지만, 『조선태종실록』 태종 3년(1403년) 기록에 의하면,
왕이 “수원부 오산(烏山)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선 적어도 1403년에
는 현 오산시(烏山市)의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을 이 문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다. 현재 오산시(烏山市)는 오산동(烏山洞)의 오산시(烏山市) 전역 확대 지명이다.
오산(烏山)은 까마귀가 많았고, 200m이하의 구릉이지만 오산시(烏山市)의 70%가
산으로 구성된 곳이다. 결국 까마귀가 많고 산이 많아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으로
지어진 곳이다. 까마귀는 다음과 같은 상징성을 갖고 있는데, 오산(烏山)의 정체성
과도 부합한다. 까마귀와 산의 상징성을 추출하여, 신성(神誠), 충효(忠孝), 지혜(智
慧), 용맹(勇猛)의 도시로 상징성을 확정하고 있다. 한때 까마귀가 흉조로 인식되어
조선 후기 이후에 한때는 鰲山오산, 梧山오산, 烏梅오매, 菟峴토현, 菟汎토범, 五山
오산, 五美오미, 五味오미 등으로 불린 적도 있다. 오산(烏山)은 1941년 10월 1일
수원군 성호면으로 불리다가 수원군 오산면이 되었고, 1949년 8월에는 화성군 오
산면(烏山面)이 되었으며, 1960년 1월에 화성군 오산읍(烏山邑)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오산시(烏山市)로 승격되고 시 당국은 시 승격 당시의 명칭을
오산시(烏山市)로 명명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2. 중앙동(中央洞)
1989년 1월 1일부로 오산시가 승격되면서 당시 오산리 일부(오산 1· 2· 3· 7· 8·
9리)와 부산리를 합쳐 (8개통 52개 반) 중앙동으로 되었다. 오산시의 중심부에 있
는 뜻으로 동명을 중앙동으로 정하였으며, 오산천을 중심으로 남쪽이고 서쪽은 경
부선을 중심으로 동쪽이며, 남쪽은 롯데마트앞 도로의 북쪽을 경계로 하고 동쪽은
부산동의 끝인 용인시와 경계를 이룬다. 1789년(정조13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따르면 청호면(晴湖面) 지역으로 오매리와 부산리가 현재의 중앙동 지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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