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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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대를 해산하려 하는 면장에 대항하여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 유종열(劉鍾烈, 재임기간1918~1920)에게 “면장은 왜 만세운동에 참여
하지 않는가? 만세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니 죽여라.” 하며 투석전을 하였다.
이날 저녁 무렵 군중은 더욱 늘어 7~800명에 이르고, 면사무소를 투석으로 파괴
한 다음 다시 우편소로 몰려가 일본 군경과의 통신을 두절시키기 위하여 전화기를
부수었다. 일찍부터 성호면 내에는 일본인 상인과 이민자들이 들어와 평소에 한국
인들과 감정이 대립하고 있었다. 면민들은 일본인 상점에 돌을 던져 건물을 파괴한
데 이어 일본인 가옥 11채를 파괴하였다. 또한 주재소에 투석을 한 뒤에 오산역으
로 몰려가 역을 습격, 파괴하자, 일본 경찰과 보병이 합세하여 발포하였다. 무기에
대항할 수 없자 해산하게 되었다.
오산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식민지배기구였던 면사무소, 경찰주재소 앞에서의 실
력행사를 보여준 것으로서 당연한 우리의 주권을 공표한 것이다. 오산지역에서 야
금야금 거주지를 확장하는 일본인들의 지배력을 부인한다는 실력행사였다.
오산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몰려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
한 농민들이며 거의 대부분이 성호면에 살던 주민들이었다.
이들의 만세운동에 대해 일제의 경성지방법원은 징역 6월에서 1년 8월까지 형을
선고 했다.
이성구(李成九, 수원군 일형면, 25세, 징역 1년 8월.1990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
족장 수훈), 이규선(李圭璇, 진위군 북면, 25세, 징역 1년 8월. 2006년 대한민국건
국훈장 애족장 수훈), 김경도(金敬道, 성호면 오산리, 34세, 징역 1년 6월. 2013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정규환(鄭奎煥, 성호면 오산리, 25세, 징역 1년.
1993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안낙순(安樂淳, 성호면 세교리, 44세, 궐
석, 징역 6월), 김용준(金用俊, 성호면 금암리, 38세, 궐석, 징역 6월), 유진홍(兪鎭
弘, 성호면 세교리, 34세, 궐석,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공칠보(孔七甫, 성호면
궐리, 36세, 태 90. 1995년 대통령표창) 의사들이다.
이외에도 수원헌병대에서 태형을 받은 의사들도 있다.
홍순극(洪淳克, 성호면 세교리. 태40), 홍종찬(洪鐘瓚, 성호면 세교리. 태40), 임구
연(林九連, 동탄면 금곡리. 태40), 모영철(牟永哲, 동탄 산청리. 태40), 안병덕(安秉
德, 동탄면 신리. 태40), 김정윤(金正潤, 동탄면 신리. 태40), 태40), 이교중(李敎仲,
동탄면 신리. 태40), 조인구(趙麟九, 동탄면 목리. 태40) 등이며 고초를 겪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오산의 독립만세운동은 처음에는 학생과 천도교도들의 시작으
로 시작되었고 이후에는 오산장에서 좀 더 조직적으로 농민과 상인들이 중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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