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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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산주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빛나는 독립운동이었다.
이 오산장 시위는 발안장 시위와 함께 경기도 지역 전체로 만세 시위를 전파시키
는 역할을 하였다.
이 오산의 만세운동이 벌어진 뒤 곧바로 다음날에는 권율의 세마대첩으로 유명한
곳인 독산성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오산지역의 양산동 주민, 산성면 주민 수
백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으로 파악되는데 일제히 불을 밝히고 만세의
함성을 소리 높여 일제에 항거한 것이다.
2. 오산 만세운동의 배경
오산지역이 타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이 펼쳐진 배경에는 오산지역의 교육
열을 들 수 있겠다. 오산은 일찍부터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사립학교인 신명학교가
있었다. 일제는 이 학교를 폐쇄시키고 1913년 4월 1일 오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
등학교)를 개교시킨다. 학교가 타 지역보다 일찍 존재한 것은 교육열이 높았음을
추정할 수 있겠다. 또 다른 배경은 천도교의 교세가 있었음을 배경으로 한다. 천도
교인들이 만세운동에 많이 참여하였음은 이로 알 수 있겠다. 1905년에 경부선이 개
통되면서 오산지역도 농업적인 경제침탈이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사안도 만세운동
의 배경으로 볼 수 있겠다.
3․1독립항쟁의사추모비, 오산의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의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추모비로서 오산역 광장에 세워져 있었다가 현재는 오산대역 앞 아래뜰공원으로 이전되어
있음.
일제의 무단침탈과 억압은 민족의 자존적 존립에 매우 큰 타격을 주었으며,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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