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0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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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을 멀리 또는 가까이 내려다보며 지구전을 펼칠 때 자주 올랐었다는 바위이다.
권율바위
★서랑동(西廊洞)
서랑동은 세마동에서는 가장 늦게 생겨난 마을이다. 문헌에 서랑리가 처음 등장하
는 것은 1899년(광무3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산성면의 방리 중에 서리(西
里)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랑리로 보인다. 그리고 1914년 4월 1일에 일제가 실
시한 행정구역 개편 때에 처음으로 서랑리(西廊里)란 마을명이 나온다. 이런 사실로
보아서 서랑동이 생겨난 것은 약 200여 년 전으로 보인다. 처음 마을이 생겼을 때
는 ‘사랑(沙浪)이’라고 불렸으나, 그 후에 사랭이·사랑리로 변하여 서쪽에 있는 마을
이라 서랑리(西廊里)로 불려오다 서랑동으로 되었다.
노적봉(산)
서랑동 앞쪽인 남쪽의 산으로 높이는 135.3m로 화성시 정남면 고지리·내리와 가
장동·초평동·신장동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생김새가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
아 노적봉(露積峰)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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