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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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을, ‘세마대재건촉진대’를 조직한 당시 서랑리를 비
롯한 인근 주민의 염원과 노력으로 1957년 8월 15일 세마대를 본래의 터에 복원하
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세마대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오산을 가장 오산답게 알려주는 큰 역할을 한 것이 이 권율의 세마대첩이다. 독산
성 존재의 큰 의미이자, 오산시민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탐방하면 호국의 정신을 심어주는 산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권율바위, 독산성 동문과 남문 사이에 있는 바위로서, 권율장군이 오산 청회(운암)들판을 포함한
오산지역 일대와 성중 고립을 노리며 포진한 독산성 밑 성책 바깥에 주둔한 왜적을 멀리 또는 가까이
내려다보며 지구전을 펼칠 때 자주 올랐었다는 바위.
3. 정조와 독산성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했던 독산성을 올라서 보면 너무나 조용한 도심
속의 풍광 수려한 산성인 것을 알 수 있다.
독산은 해발 208m로 오산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오산, 수원 간을 에워싼 주변
평원에 우뚝 선 산이다. 독산의 주봉은 북쪽으로 흘러 양산봉 해발 182m에 이어진
다. 여기에서 서북쪽으로 4km 가량 떨어진 화산(花山)산록에는 융릉(사도세자)과
건릉(정조)이 있으며 성황산 아래 자리 잡은 용주사가 내려다보인다.
처음 수원읍치는 현재 융·건릉 주변 화산에 있었다. 정조 때 양주 배봉산에 있던
장헌(사도)세자 묘인 영우원을 수원 읍치인 화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옛 수원읍치
는 현재의 팔달산 화성행궁으로 치소를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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