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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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고,  이  가운데에는  승군(僧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승려들이  성

                  을  지키는데  힘이  되는  정도가  혹  산성의  병정보다도  나을  때가  있음을  익히  알았
                  기  때문이다.
                    정조  이후  순조  연간  용주사와  마찬가지로  독산성에는  승군이  편재되어  있었다.
                  당시  승군은  103명으로  보적사  6명,  용주사  85명,  만의사  1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보적사에는  6명  이상의  승려가  상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승군의  치

                  영으로서  보적사의  역할이  중요하였던  셈이다.  순조  연간인  19세기  독산성  성내
                  126호,  성외  127호가  살고  있었다.  이들의  신앙  공간으로서도  보적사는  존재  의미
                  가  있었던  셈이기도  하다.
                    보적사  약사전은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할  당시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0년  주지였던  주대식스님이  약사전을  헐고  현재의  대웅전을  지었다고  한다.




























                                                     벚꽃  만개한  보적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규모에  맞배지붕을  얹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
                  지장보살좌상과  16나한  및  후불탱,  산신탱,  칠성탱,  산신탱의  불화와  범종이  있으
                  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사적비와  3층  석탑,  요사  2채,  석가세존진신사리  봉안공덕
                  비,  그리고  2기의  석등  등으로  가람을  구성하고  있다.

                    독산성  주변에는  산책로도  잘  개발되어있는데,  복원  삼남길도  독산성  곁과  안을
                  지난다.  삼남길  오산구간  중  독산성길이  이  독산성을  거쳐  지나가도록  설치되어  있
                  다.  또,  금암동고인돌공원에서  여계산의  애기바위를  거쳐  독산성  남문을  통과하여
                  권율바위에  이르는  권율역사문화탐방로가  제4회오산독산성문화제  때  트렉킹코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독산성산림욕장도  개설되어  있어  건강과  맑은  공기를  듬뿍
                  호흡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독산성산림욕장은  총면적이  20.7ha로서  체육단련시
                  설과  숲속교실,  산책로  등  시민들의  신체단련  공간으로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며,  가
                  족끼리  또는  동호인끼리  역사와  건강을  함께  얻는  체험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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