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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역대 국회의원선거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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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헌 국회의원선거                                                                                     /  행정


                    제헌 국회의원선거는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됐다. 이 선거는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미군정에
                  의해 실시되었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이 선거야말로 해방정국을 극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정

                  치축제였다. 그러나 모든 국민과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전 국민의 축제로 보기는 어려웠다. 조선공산
                  당은 일찌감치 선거를 부정하고 유격전을 선언하여 관공서 습격, 선거함 방화 등 선거방해공작을 전

                  개하고 있었다. 또한 1948년 8월 여운형이 암살된 이후 온건좌파세력들은 조선공산당과 남북협상세
                  력에 분산되어 합류하였고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김구와 김규식 등 우익세력들도 선거에 불참

                  하였기 때문에 이승만 계열과 한민당 인사 등 강성 우파세력들만 선거에 참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
                  다. 개인별로 참여한 중도좌우파세력은 제헌국회 내의 진보세력을 구축한다. 요컨대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많은 정치세력들이 불참하고 강성우파세력들이 장악함으로써 이후 한국정치가 보여주는 보
                  수성과 정치적 비대표성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보통선거인 5·10선거는 경찰과 우익청년단들의 감시와 독려 속에 1만
                  3,272개 투표구에서 784만 871명의 선거인 가운데 748만 7,649명이 투표해 95.5%라는 경이적인 투

                  표율을 기록했다. 총유권자 대비 투표율은 71.6%였으나 모든 유권자들이 선거인으로 등록하지 않았
                  고, 등록한 유권자들은 대부분 투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선거는 1947년 9월 남조선 과도정부가 공

                  포한 입법의원선거법을 토대로 치러졌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의 원칙 아래 선거권은 만 21
                  세, 피선거권은 만 25세였으며 1구 1인의 소선거구제를 채택하였고 국회의원 임기는 2년이었다. 총

                  선은 총 48개 정당, 사회단체, 무소속 등 948명의 후보자들이 출마하여 평균 4.7:1의 경쟁률을 보였
                  다. 선거결과는 대한독립촉성회 55명, 한국민주당 29명, 대동청년단 12명, 조선민족청년당 6명, 기

                  타 정당 13명, 무소속 85명 등 198명이 당선되었다. 무소속의 대부분이 한민당 계열 인사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승만과 한민당 세력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경기도의 선거구는 모두 29개로 1,661

                  개 투표구에서 108만 8,515명의 선거인 가운데 105만 392명이 투표함으로써 96.5%의 투표율을 나타
                  냈다.

                    오늘날의 오산시는 수원을구에 화성군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선거
                  정보시스템은 경기도의 제27선거구인 수원을구의 득표상황은 보여주지만, 선거인수와 투표율은 확

                  인할 수 없다. 수원을구에서는 구자혁, 김웅진, 홍수환 등 3명의 후보가 입후보하여 3대 1의 경쟁률
                  을 나타냈다. 세 후보 모두 정당에 소속되지 않았고, 직업이나 학·경력 등이 매우 낮아서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엘리트 충원양상을 보여준다. 선거결과는 김웅진이 1만 7,848표를 얻어 당선되고 홍수환
                  이 1만 5,149표, 구자혁이 9,485표를 득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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