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제3권
P. 53
종말을 고했다. 이 와중에 화성군 갑구의 국회의원 손도심도 불명예 퇴진하게 되면서 화성 유권자의 51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화성 정치사에 오점을 남겼다. 4·19혁명의 격렬한 파고를 오산 역시 벗어날 정치
수 없었다. 3월 초부터 서울, 수원지역에서 발생한 학생시위의 영향을 받은 오산고 학생들은 3월 13 / 행정
일 오산 장날에 부정선거규탄시위를 열었다. 학생간부들과 1, 2학년 학생 90여명이 오산시장에서 농
민들 앞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경찰·반공애국청년단과 대치하다가 해산하였다. 순수하고 어린 고
등학생들이 만든 결의문 전단 내용은 “독재정권 물러나라”, “부정선거 음모 타파하라”, “이승만·이
기붕 물러가라”였고, 역사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5. 제5대 국회의원선거
제5대 국회의원선거와 초대참의원선거는 1960년 7월 29일 동시에 실시됐다. 4·19혁명의 영향으
로 선거 열기는 매우 뜨거웠고 자유당의 몰락으로 민주인사들이 대거 출마했던 선거였다. 국회의원
선거는 233개 선거구에 1,518명이 출마해서 6.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역대 선거에 비해서 비교적
경쟁률이 높은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정치권이 새롭게 재편되면서 정당의 제약에서 벗어나 많은 사
람들이 출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표는 전국 7,079개 투표구에서 총선거인 1,159만여 명 가운데 978만여 명이 투표해서 84.3%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경기도에서는 25개 선거구에 243명이 입후보해 9.7대 1의 경쟁을 나타냈고, 746
개 투표구에서 총선거인 129만 7,896명 가운데 110만 8,052명(85.4%)이 투표했다. 화성군 을구에서
는 세 차례 낙선한 서태원을 비롯하여 모두 17명이 입후보하여 단일 선거구 국회의원 선거 사상 최다
출마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모두 25개 투표구에서 88.9%의 투표율을 보이면서 진행된 선거의 개표
결과는 네 번째 출마한 무소속의 서태원이 1만 542표를 얻어 4,962표에 그친 민주당의 강을순을 누
르고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러 번 낙선하는 후보가 동정표로 당선되는 사례가 흔하기도
하지만 무소속으로 비교적 많은 득표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5대 국회의원선거 화성군 을구 후보별 인적사항 및 득표상황
정당명 성명 성별 나이 주소 직업 학력 경력 득표수
무소속 서태원 남 4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효고산동 무직 고려대졸 화성군교육위원 10,542
민주당서울시
민주당 강을순 남 38 서울특별시 남대문구 만리동 상업 홍익대 중퇴 4,962
당정위원장
무소속 박정환 남 46 화성군 안용면 고영리 상업 수원고농부속실업교졸 안용면의회의장 4,738
무소속 최상헌 남 53 화성군 봉담면 왕림리 농업 상해교통대 중퇴 면장 4,063
무소속 신종식 남 60 화성군 향남면 농업 고졸 향남면장 2,681
무소속 박승문 남 4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흑석동 무직 일본명대영문과졸 중앙대법정대학장 2,500
자유당 송영균 남 46 화성군 장안면 석포리 농업 양면의숙졸 협신운수사장 2,270
무소속 김무기 남 41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회사원 전문 수료 한국무역협회이사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