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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내부는 정면에 약 70센티미터 높이의 단을 만들었다. 단의 왼쪽은 지름 약 30센
티미터, 깊이는 약 50센티미터 정도 부분의 공간이 있고, 나무로 뚜껑을 만들었다. 이
곳에는 촛대와 향로 등의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제단 왼쪽의 이 공간은 조라술을 담가
두는 곳이다. 조라술은 당주가 하루 전날 와서 담갔다. 제단의 아래쪽은 가로 30센티미
터, 세로 25센티미터, 높이 2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단을 만들어 향로를 올리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당의 제단위에는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한 흔적이 남아있다. 당의 정면 양쪽에는 시멘
트로 마감한 후 시멘트가 아직 굳기 전에 글씨를 새겨 놓았다. 당의 정면 왼쪽에는 ‘錦
岩靑年會 謹呈’이라는 글씨와 당의 왼쪽에는 당을 개축할 날짜를 새겼다. 개축하기 전
에 제당은 이엉으로 얹은 초가형태로, 매해 산신제 전날에 제관으로 뽑힌 심부름하는
사람들이 이엉을 새로 갈았다. 이엉은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엮었는데, 매해 10집
에서 이엉 한 마름과 새끼줄 열 발을 냈다.
금암동의 산신제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제물로는 북어 2마리, 닭 2마리, 삼색실
과 등을 올리는 것이 알려져 있다. 제물의 종류나 제사 절차, 제비의 장만과 제관의 선
임 등에 관한 내용은 2003년 세교택지개발지구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를 통해 비교적
그 내용을 소상하게 알 수 있다. 보고 내용에 의하면 제물로 올리는 소는 잡아서 소머
리, 소 앞뒤의 다리 하나씩, 갈비 한쪽, 등심 등을 올리는데, 그 분량이 소 반 마리 정도
에 해당한다. 제물로 올리는 소는 수놈이어야 하고 털은 누런색으로 일정해야 한다. 닭
은 암수 2마리로, 깨끗하게 털을 뽑아서 생으로 올린다. 떡은 서되 서홉의 백설기를 당
주집에서 마련하며, 조라는 당주가 산제사 전날 당집에 가서 담근다. 이 외에 통북어 열
마리, 대추 한 되, 밤 한 되, 감 열개, 조기 한 마리 등이 올라간다.
제비는 그 해에 필요한 경비를 집집마다 추렴했다. 제물은 이장이 구입했는데 소는
주로 오산장에서 샀다. 제물소는 하루 전날 잡아 제물로 올릴 부분을 미리 떼어 두었다.
제사는 제관들만 올라가 유교식으로 지내고, 제사를 마친 후에는 마을소지와 각 가정
별로 소지를 한 장씩 올렸다. 제사를 마친 후에는 당주집으로 제물을 옮겨 음복이 진행
되었는데, 제물로 올렸던 것을 먹으면 재수가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 분육도 이루
어졌는데,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분과 제일을 잡는 분에게 골고루 나누는 몫 외에
오산시사 신장 하나씩을 더 주었다.
2001년부터는 제사의 규모를 줄여 쇠머리와 우족만 사서 지내는 약식으로 치러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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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마을회관에서 음복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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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9) 『오산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오산시,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