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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한다. 그만큼 당은 신성한 곳이고 또 마을의 안전을 지켜주는 곳이기도 했다는 의미라고 본다. 145
현재 이 마을에 산신을 믿는 정도는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 대체로 불교를 많이 믿고 있으나, 교회 구비전승
를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종교와는 무관하게 마을의 토박이들은 산신을 믿는 사람도 꽤
있다. 산신을 믿음으로써 부락에는 나쁜 일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 민속
당집의 내부에는 제의에 사용되는 그릇들이 보관되어 있다. 당에 두지 않고 그것이 마을로 오게 되 · 경기도당굿과
면, 가령, 임산부가 쓸 수도 있고, 상갓집에서 쓸 수도 있으므로 온갖 부정이 들 수 있기에 함부로 당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한 켠 가득히 제에 쓰이는 음식을 올리는 나무 단상이 두 개 있다. 뒤쪽 벽
에 붙어있는 가는 나무는 가운데 축문을 놓고 양옆으로 촛대를 올리는 용도로 사용한다. 그 외에는
경기재인청
아무것도 올려놓아서는 안 된다. 그 앞으로 붙여져 있는 넓은 제상은 음식을 올려놓는 것이다. 제사
를 올릴 때에는 음식을 놓는 제상의 위, 4개의 다리가 보이는 앞, 양옆을 모두 창호지로 가린다. 제기
는 놋그릇을 사용했었지만, 다시 제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은 플라스틱 그릇과 양은 그릇들을 사용한 / 성씨
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은 신을 수 없고 오직 제관만이 신는다는 신발이 한 켤레 있다. · 인물
또한 예전에는 성황도 있었다. 옛날 땅 주인은 조동순 씨로 현재 대성빌라가 있는 곳에 성황이 있
었다. 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난 뒤에 성황에서 시루떡을 해 놓고 마을 사람들이 잘 되기를 빌었다.
당집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조그만 우물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당우물로 제관이 목욕재계를
하는 곳이다. 당우물은 땅에서 물이 솟아오르며 한겨울에도 그다지 차갑지 않아, 그물로 목욕을 할
정도라고 한다. 당우물은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이 목욕을 하거나 산제사날 설거지를 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우물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마을의 공동우물의 물이 부족
하여 예전에는 간혹 이 물을 길어다 먹기도 하였는데 물을 먹은 사람에게 반드시 해가 갔다고 한다.
이 우물도 아파트 건립으로 없어졌다.
당의 왼쪽으로는 엄나무가 있다. 수령이 약 200년가량 되었다고 하며 이 나무에도 제를 올린다. 이
른바 신목(神木)인 셈이다. 우물 옆 엄나무에는 오색의 천이 묶여져 있는데, 이는 마을에서 한 것이
아니라 무속인들이 기도를 하고 묶어 놓고 간 것이다.
매암산에 오래된 나무를 벗겨 놓았는데 어느 동네 분이 그 나무를 가져간 후에 바로 그분의 아들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렇듯 이 마을의 당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한편 롯데물류창고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에 왕버드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그곳에서 열 걸음
정도 더 마을로 들어오면 엄나무가 있었고 상여막도 있었다고 한다. 장승은 바로 그 자리에 세웠는데
나무를 깎아서 만든 나무판자에다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써서 장승을 세웠었다고 전한다.
제보자 : 이철배 외
11) 벌음동
벌음동의 산제사는 음력 시월 달에 날을 봐서 1일부터 10일 안으로 지냈다. 산제사를 지내는 산은
웬수골이라고 했으며 당집은 없었다. 소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그곳에 제당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그
러나 지금 소나무는 고목이 되어 없어진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