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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다는 점은 그 사실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것이라 판단한다. 또한 술은 마을에서 직접 빚은 것을
사용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3일 전에 조라술을 담그어 사용한다. 조라에는 누룩을 사용한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은 신을 수 없고 오직 제관만이 신는다는 신발이 한 켤레 있다.
(1) 산신제
부산동은 매암산의 당집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부산동의 개량굴 쪽에서는 매암산을 된봉이라고 불
렀다. 산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지낸다(음력 9월 30일 밤 12시 이후). 산신제를 지내는 데 소요
되는 시간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약 30분 정도이다.
제관은 1년마다 선출한다. 제의를 주관하는 사람은 제관 외에도 축관, 화장, 당주를 선출한다. 이들
은 모두 그 해의 생기복덕을 보아 부정이 없는 사람들이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일체 비린 것을 금해
야 한다. 그런데 소고기는 먹어도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관은 초상집 문상도 금지하였을 뿐만 아
니라 임산부를 만나거나 마을 밖을 벗어나는 것도 금지되었다고 한다. 장에 가는 것조차 금기된다.
당집은 외관상 기와처럼 보이나 검은색 슬레이트 지붕이며 외벽을 붉은 벽돌로 쌓았다. 그리고 당
집의 밖에는 아궁이가 있는데 이는 제의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산신제의 제물은 소머리, 닭은 한 마리, 대구포와 과일은 사과와 배를 각각 7개씩 올린다. 그리고
떡은 흰색의 가래떡과 검은색의 시루떡을 사용하는데 특이한 것은 가래떡을 용떡이라고 한다는 점이
다. 용떡을 올리는 지역은 흔히 바닷가 마을의 제사에 쓰이는 것인데 부산동의 산신제에서 용떡을 사
용하다는 점은 그 사실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것이라 판단한다. 또한 술은 마을에서 직접 빚은 것을
사용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3일 전에 조라술을 담그어 사용한다. 조라에는 누룩을 사용한다.
제의 순서는 일반 제사의 순서와 같다. 잔을 올려 신을 청하고, 축문을 읽고, 마을의 대동소지를 올
린 뒤에 마을주민들의 소지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여느 마을의 제의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제의 3일 전부터 목욕하고 근신한다. 제의날 밤 12시에 제물을 진설하고 축을 읽는다. 제의가
끝나면 3일간 당에 불을 켜둔다.
부산동의 매암산 산신제에는 호랑이 신을 모신다고 한다. 그러나 당 안에 호랑이나 산신의 그림(화
분) 등을 모시지는 않는다. 부산동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것은 마을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매암산의 산신제는 1995년을 전후하여 중단되었었다. 약 6 ~7년 가량 중단되었던 산
신제를 다시 지내게 된 것은 마을에 변고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을의 젊은이
들이 병들고 죽어갔다. 이에 마을에서는 그 원인을 산신제를 지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오산시사 2000년에 다시 당집을 짓고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가, 현재 2017년 경 아파
트 건립으로 당집은 없어졌다.
제 당집은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경비를 추렴하고 공사도 함께 했다. 산신제를 다시 지내면서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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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특별히 더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매암산 산신
의 은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집의 신령함에 대하여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과장된 감은 있지만,
144 마을의 어른들께서는 한국전쟁 때 총을 쏴도 총알이 박히지 않았다고 한다. 안 들어갔다는 말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