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제6권
P. 151
어가는 산 정상 부분에 있다. 2005년 5월 이 산은 일부분의 수종갱신이 진행된 상태로, 산의 상당부 149
분에 벌목이 함께 진행되었다. 벌목이 진행된 부분의 일부에는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있다. 구비전승
오리골의 제당은 오리골에서 금암동을 넘어가는 고개 부분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300미
터 정도 올라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곳을 지나 정상부분에 자리한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는 다른 소나 · 민속
무에 비해 수령이 약간 더 되어 보이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제당으로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 · 경기도당굿과
편이다. 나무의 주변으로는 여러 기의 민묘들이 있다.
신목은 벼락을 맞아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남아있는 나무의 일부분도 고사한 상태이다. 떨
어져 나간 가지는 제당 옆 무덤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신목으로 여겨지는 나무의 가지이기 때문에
경기재인청
함부로 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신목의 주위는 약 서너 평정도 크기로 평평한 상태이다. 제를 지낼 때
는 이 부분에 차일을 치고 제물을 진설한다.
제당이 있는 곳에서 산의 주능선을 따라 오리골 방향을 내려오면, 제당과 약 100미터도 채 되지 않 / 성씨
는 곳에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모양으로 바위의 앞부분에는 잡 · 인물
석을 이용해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제물은 소머리, 황계수탉, 삼색실과, 3되 3홉 분량의 백설기 등이다. 예전에는 쇠머리 대신 당우물
이 있는 곳에서 소를 잡아 각 부위별로 고르게 올렸다. 제물로 올리는 황계수탉은 깨끗하게 털만 뽑
은 채 생으로 올렸고, 조라술은 당주가 당일 아침에 담가 제당의 신목 옆에 묻어 두었다가 저녁에 걸
러서 사용하였다. 소를 잡아 제물로 올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마을의 그해 형편에 따라 달랐다. 농사
가 풍년인 경우 소를 사서 올리고, 흉년일 경우 제를 지내지 않거나 소머리로 대체하였다. 소를 사서
올리는 경우 소의 선택은 못 생기고 고기가 많이 나올 것 같은 것을 택하였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마을 제사에 올리는 가장 비중 있는 제물로서의 기준과 크게 다른 것이다. 못생긴
소와 고기가 많이 나올 것 같은 소를 구입하는 것은 정상적인 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며 많은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이 가장 크게 고려되었던 것이다.
제물로 소를 잡을 경우 각 가구별로 쌀 1말 정도를 냈다. 소를 사서 올렸던 것은 약 40년 전까지의
상황으로 당시 쌀 1말의 가격은 농가에서 대개 3일 치의 임금에 해당하였다. 지금은 소머리를 준비해
올린다.
산제당에는 당주와 제관, 축관, 심부름꾼 등 남자들만 올라가 지낸다. 제의는 초헌, 독축, 아헌, 종
헌, 소지로 진행된다. 제사를 마친 후 올리는 소지는 당주, 제관, 축관, 심부름꾼, 마을 사람들의 순이
다. 소지를 마친 후에는 제물을 조금씩 떼어 제당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둔다.
梧里洞山祝稧座目
小春
戊戌陽月提月之夕粧冊
孟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