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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출급오냥이기타이거자절반이냥오전환출급차
본래부터 거주하던 사람 외에 이주하여 오는 사람들 역시 계원이 되려면 다섯 냥씩을 거두고, 만약
에 계원으로 이사를 나가는 경우 술 한 동이를 진정한 사람은 다섯 냥을 되돌려주고, 그 밖의 경우에
는 다섯 냥의 절반인 두 냥 오전을 되돌려준다.
一.家例以座目次第酒一盆式進呈事
일.가례이좌목차제주일분식진정사
각 가정은 좌목의 법식에 따라 술 한 동이씩을 산신령님께 올린다.
一.公員有司亦依座目次第事
일.공원유사역의좌목차제사
각 계원들은 소임은 좌목의 차례에 의하여 정한다.
一.未盡條件追後磨鍊事
일.미진조건추후마련사
미진한 조건들은 추후에 마련한다.
15) 수청동
우물제사는 마을의 상쇠가 주장이 되었다고 한다. 우물 앞에 팥시루를 놓고 북어를 꽂고 그 위에는
주발에 쌀을 담고 실을 놓았다. 과일은 올리지 않았다. 그러면 두레패가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치고 상
쇠가 꽹과리를 치면서 진행한다. 상쇠가 비나리를 하고 고사반을 하였다고 한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술은 직접 마을에서 빚은 술을 사용한다. 과일은 사과, 배, 감, 곶감, 대추
를 사용하고 나물은 도라지, 숙주, 고사리, 시금치, 무나물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북어포를 올리고 떡
은 팥고물이 들어간 시루떡을 올린다. 산적(炙)은 소고기로 만들어 올리고, 제사상에는 돼지머리를
놓는다. 가정의 제사 상차림과 돼지머리를 올리는 것 외에 크게 다른 점이 없다.
(1) 산신제
한편 필자가 2005년 오산지역을 답사할 당시에는 산신제에 대한 자료도 조사되었다. 그 자료를 기
술하기로 한다.
수청동에는 16년 전까지는 당집이 있었으며 마을이 개발되면서 없어졌다. 예전에 당집이 있었을
오산시사 때까지는 덕망 있고 학식이 있는 분들 중(남자만)에서 마을의 회의를 통해 제관을 선출하였다.
산신제가 중단되기 전의 방식에 대하여는 제보를 듣지 못하였으나, 오늘날 행하고 있는 산신제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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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여자가 참석을 하면 제사에 부정이 든다하여서 여자는 참석하지 않고 남자들
만 참석을 한다. 여자들은 주로 음식을 장만하는 일을 했고 제사 지낼 때 필요한 물품들은 각자 집에
서 조금씩 가져와 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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