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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m, 너비 1.52m, 깊이 약 70cm 정도이며, 풍화암반층을 굴토하고 조성하였는데 남벽이 유실된 375
채 확인되었으므로 굴식(횡혈식, 橫穴式)인지 앞트기식(횡구식, 橫口式)인지 명확하지 않다. 벽석은 역사
큰 판석을 가로로 쌓았으며, 1~2단 정도 남아있었다. 주검이 안치되는 시상(屍床)은 두 개체가 확인 / 유적
되는데, 중앙에 1기(2,4×0.75×0.3m)와 동쪽에 1기(1.05×0.35×0.5m)이다.
조사단은 출토유물과 등을 통해 굴방무덤의 조성 시기를 7세기 중엽으로 보았다. · 유물
그림 3. 가장동 유적 1호 돌방무덤 및 출토유물(경기문화재연구원 2008에서 수정 후 인용)
3. 가장동 유적(佳長洞 遺蹟) ②
가장동 394-1번지 일원에 위치한 오산가장2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서경문화재연구원에서
2009~2011년도에 실시한 발굴조사로 확인된 유적이다. 석산(해발 135.3m)의 정상부에서 서남쪽으
로 이어지는 능선과 노적봉(해발 160.3m)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는 지점의 곡간부 및
능선부를 포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유구는 신석기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261기가 조사
되었으며, 약 117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적 내에서는 신라 집터 9기가 확인되었는데, 5-4지점 4기와 7지점 4기가 군집하여 위치하며,
5-5지점 1기는 단독으로 위치하였다. 집터는 대부분 구들시설이 확인되었는데, 형태상 ‘ㅡ’자·‘ㄱ’
자·‘T’자 형태가 모두 관찰된다. 이는 군집된 집터의 경우 시간차를 두고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
한다.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 유물은 5-4지점 3호 집터의 철촉, 7지점 2호 집터의 철촉 및 1단
투공 굽다리접시이다. 각 지점 두 기의 집터 이외에 다른 집터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점으로 추정되는데, 토기편만 확인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파상문이 시문된 대옹 경부나 침선+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