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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헌기록을 보면 독성여왕릉은 고려왕릉으로 전해지며 진남루 아래의 산기슭에 위치하
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남루의 위치에 대해서 남문의 문루 또는 별도의 공간에 설치된 장대라는
5)
의견 이 있지만, 독산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독성여왕릉은 독산
성 남쪽, 정확히는 진남루 남쪽의 산기슭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6)
이후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京畿道 古蹟臺帳』 에는 독성여왕릉으로 판단되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
은 위치와 성격뿐만 아니라 규모와 특징 등이 추가되어 있는데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京畿道 古蹟臺帳』水原郡 古蹟 7)
장소 : 성호면 지곶리
소유 : 사유
적요 : 직경 약 2간, 토분 1개가 있다. 묘 앞에 2개의 석인이 있는데 1개는 훼손되었다. 마을사람에
따르면 ‘家陵’으로 불리는 고려 왕자의 무덤으로 전해진다.
경기도 고적 대장의 기록은 당시 성호면 지곶리(현재 지곶동)에서 확인된 고분에 대한 기록으로 규
모와 형태, 성격 등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水原郡邑誌』와는 다르게 고분으로 종류만 구
별되어 있고 별도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고분의 위치가 성호면 지곶리로 되어 있어
독산성과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분이 陵으로 불리고 묘주가 고려왕
자로 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水原郡邑誌』의 독성여왕릉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따라
서 『京畿道 古蹟臺帳』에 기록된 고분은 별도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독성여왕릉의 기록으로
판단된다.
한편, 오산시의 「향토의 역사와 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표조사를 통해 지곶동 폐고분
8)
(속칭 여왕릉) 1기가 보고되었다 . 이 폐고분은 봉분의 흔적이 없지만 장대석 3기와 문인석 1기가 확
인되었는데 주민들은 『水原郡邑誌』의 여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다. 지곶동 주변에는 석물을 갖춘 다른
분묘가 확인되지 않고 이 폐고분에서만 문인석이 존재하고 있으며, 주변 주민들의 인식 등을 볼 때
『京畿道 古蹟臺帳』에 기록된 고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폐고분은 독성여왕릉으로
판단된다. 다만, 『京畿道 古蹟臺帳』의 고분과 문인석의 수량이 차이가 있고 현재는 봉분의 흔적을 찾
을 수 없어 형태가 동일한지는 확인할 수 없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분의 봉분은 파괴되고 문인
오산시사
5) 이용범, 2017, 「독산성 진남루 위치에 대한 재검토 -문헌기록을 중심으로-」,『오산학연구Ⅱ』, 오산향토문화연구소
제
2 6) 殖産局 山林科(추정), 1916~1917,『京畿道 古蹟臺帳』.
권 7) 『京畿道 古蹟臺帳』水原郡 古墳
場所 : 城湖面紙串里
所有 : 私有
摘要 : 圣約二間, 土墳一アリ墓前二石人一基創ル里人ハ家陵ト称〇高麗,王子,墓ナリト傳フ
450 8) 세종대학교·오산시, 2005,『烏山市의 歷史와 文化遺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