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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은 유실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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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지곶동 폐고분 전경 및 문인석(세종대학교·오산시, 2005, 『烏山市의 歷史와 文化遺蹟』)




                    독성여왕릉의 축조시기에 대하여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기록을 보면 모두 고려시대로 보고 있

                  다. 그러나 지곶동 폐고분에 대한 지표조사를 했던 조사자는 문인석이 복두공복형으로 조선전기 양
                  식이고, 고려왕릉이 개성을 벗어난 곳에 있을 가능성이 낮아 여왕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

                  여 조선시대의 분묘로 보고 있다. 또한, 여왕릉의 ‘麗’를 백제 진사왕의 이름인 ‘餘暉’의 ‘餘’로 해석하
                                              10)
                  여 진사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 도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고려를 ‘麗’ 또는 ‘高麗’로 표기하고
                                                                  11)
                  있고 특히, 『水原郡邑誌』가 편찬된 19세기의 『承政院日記』 를 보면 고려 태조릉과 경릉(고려 문종)을
                  여왕릉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여왕릉의 ‘麗’는 고려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으로 독성여왕릉에 대한 기록을 종합해보면 독산성 진남루 남쪽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직경은

                          12)
                  약 3.64m 로 문인석 2기가 있었으며, 묘주는 고려왕자로 가릉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고분의 형태와




                  9)   이 문인석은 현재 사진만 남아있고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 2008년 한신대학교박물관에서 동일한 위치를 지표조사(오산시·한신대학
                     교박물관, 2007,『文化遺蹟分布地圖-오산시』.) 하였지만, 문인석에 대한 내용이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유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10) 임종삼, 2015,「독성여왕릉禿城麗王陵의 정체에 대한 小考」,『오산학연구』, 오산향토문화연구소.
                  11) 『承政院日記』高宗
                     고종 4년 11월 3일
                     傳曰, 麗王陵寢, 今旣修治矣。麗太祖陵,…(후략)…
                     고종 42년 8월 26일
                     …(전략)…長湍郡所在麗王景陵第三陵陵上修改事畢後, 遣秘書丞致祭事, 命下矣。…(후략)…
                  12) 경기도 고적 대장에는 二間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一間은 현재 약 1.82m로 환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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