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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지형도와 지적원도 및 현대의 항공사진(그림 12)을 종합하여 볼 때 지곶동 359번지
                  일원은 조선시대부터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지형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

                  어 『水原郡邑誌』등에 기록된 독성여왕릉의 입지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곶동 폐고
                  분이 위치한 지곶동 332번지 일원이 문헌에 기록된 독성여왕릉의 입지와 유사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특이점으로는 조선시대부터 주변이 모두 경작지로 활용되었지만 독성여왕릉으로 비정되는
                  지곶동 359번지만 야트막한 구릉을 유지하고 있고,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지목이 묘

                  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과 지목의 분류 등으로 인해 문헌상 기록과 입지면에서 차이
                  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곶동 359번지를 독성여왕릉으로 비정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인 『京畿道 古蹟臺帳』의 보면 독성여왕릉은 규모 약 1.82m 봉분 1기와
                  문인석 2기가 잔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지곶동 359번지의 지표조사 결과 약 7~10m의 봉분 2

                  기가 있고 할석이 주변에서 일부 확인되지만 문인석과 같은 석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할석도 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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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관련되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보고되었다.  잔존양상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와 『京畿道 古
                  蹟臺帳』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먼저 문인석과 같은 석물이 지곶동 359번지에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봉분의 수량과 규모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사단은 무덤 조성 후 붕괴

                  로 인하여 원래보다 규모가 더 커진 것으로 보면서도 붕괴와 2기의 봉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고
                  『京畿道 古蹟臺帳』의 기록과는 규모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지곶동 폐고분이 위치한 지곶동 332번지 일원에서 문인석이 1기가 조사되었는데, 지곶동 일
                  원에서 이 폐고분을 제외하고 문인석이 확인된 분묘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봉분의 규모 등을 확

                  인할 수 없지만, 『京畿道 古蹟臺帳』에 기록된 고분은 지곶동 332번지 일원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으로 『水原郡邑誌』와 『京畿道 古蹟臺帳』에 기록된 입지와 규모, 특징 등을 일제강점기의 지형

                  도와 지적원도, 현재의 잔존양상 등을 토대로 검토해 본 결과 대부분 독성여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는
                  지곶동 359번지 일원보다는 지곶동 332번지 일원이 문헌에 기록된 독성여왕릉에 보다 가깝다는 것

                  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두 곳 모두 지표조사 이외에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형 등으로 위치를

                  추론한 것이고 독성여왕릉이 존재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기 때문에 추후 조사나 새로운 기록 등에 따
                  라서 독성여왕릉의 위치는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오산시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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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456           18) 주 16의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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