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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설치하였다는 사실 외에 독산(禿山), 독산성(獨山城)으로 기록된 곳에서 삼국 간에 여러 차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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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의 위치가 어느 곳인지는 불분명한 상태이다.  또한 고
                  려시대에 독산성과 관계된 기록이 전혀 없어 독산성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한 가운데 독산성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임진왜란을 통해 수원

                  부 외성(外城)으로 기능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수원부에는 원래 읍성(邑城)과 독산성 등 2개의
                  성이 있었다. 읍성은 조선전기에 이미 붕괴되어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독산성

                  이 수원부 인근의 유일한 산성(山城)으로서 유사시에 백성들을 피신시켜 외적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
                  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의병장 김천일(金千鎰)이 독산성에 웅거하였고, 권율장군이 행주산성

                  으로 가던 중 독산성에 진을 치고 왜적과 대치하였던 것은 독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입증한 사건으
                  로서 그 이후 경기도 남쪽 방어에 중요한 산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오산시사
                                  그림 1.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전경(2018년 촬영, 중부고고학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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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8           1)  ‘독산’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지명 자체가 ‘홀로 외롭게 떨어져 있는 산’ 혹은 ‘평야 또는 하천변에 독립된 구
                    릉을 이르는 말’로 추정되기 때문에 문헌의 ‘독산의 목책’이나 ‘독산성’은 현재의 독산성이 아닌 것으로 보는 연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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