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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1~1.5m 정도 낮게 조성되는 것과 달리 협축식은 2~3m 정도로 높은 편임을 감안했을 때 독산성
의 초축(初築)성벽은 높이 약 7~8m 정도의 협축식 성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6~2018년에 걸친 독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유물이 소량 확인되었다. ①번 유물은 단
각고배로 추정되는 잔편으로, 배신부(잔 하부)와 대각부(다리)가 확인된다. 대각부 외면에는 선명하
고 두꺼운 요철면이 확인되는데, 물레의 회전을 이용한 성형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대각의 끝부분
은 살짝 말려져 있다. 더불어 대각부에 구멍이 뚫린 부분이 관찰된다. 이러한 형태의 단각고배는 신
라 후기양식토기의 대표적인 기종으로서, 사용된 시기는 6~7세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진흥
왕대에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 시점이 6세기 중반경이므로 오산 독산성에서 출토된 단각고배
의 상한은 6세기 중~후반경으로 추정된다.
그림 4. 독산성 출토 신라~통일신라 유물(필자 촬영)
②, ③번 유물은 뚜껑의 잔편이다. ②번 뚜껑은 형태상 반구형(半球形)이며, 바깥쪽 면을 보면 미완
오산시사
성의 원과 그 안에 점을 찍은 듯한 문양이 남아 있다. 그리고 원의 상단에는 형태를 알 수 없는 선들
이 관찰된다. 이러한 형태는 신라~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문양인 인화문이 출현하기 이전의 문양이
제 다. 경기지역에서 확인되는 시기는 대략 6세기 중반~7세기 초엽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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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③번 유물은 손잡이 부분과 그릇을 덮는 부분이 모두 결실되었으며, 외면에 문양이 남아 있다. 가
운데 크기가 다른 2개의 원을 겹쳐 배치한 후 그 주변으로 직선을 돌려서 찍어 꽃처럼 표현하였으며,
462 이 꽃모양이 손잡이 주변을 둘러 찍혀 있다. 전형적인 인화문으로 ②번 뚜껑의 유행이 지난 후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