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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청동과 청학동 모두 유리제와 마노제의 작은 구슬이 다량 발견된 점이 주목된다. 유리제 구슬은
                  대부분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마노제 역시 한반도에서 산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산일 가능성이 높다. 수청동에서 발견된 유리 구슬 중 적갈색 유리구슬
                  의 성분은 인접한 마하리 고분 출토품과는 유사하고 아산 명암리 밖지므레 출토품과는 상이하다.                             25)

                    오산지역의 주거지와 분묘의 구조가 백제 중앙과 다르고 화성, 수원과도 다른 점을 고려하면  이곳
                  에 하나의 지역 정치체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마한 소국명에 수원,

                  화성, 오산을 무리하게 대입하기 보다는 경기 남부에 존재하던 수많은 정치체 중 하나가 세교지구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다가 서서히 백제에 편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산지역에 설치된 백제의 관방 시설은 아직 분명치 않으나 독산성이 유력한 후보이다. 황구지천
                  의 남편에 접하여 축조된 테뫼식 산성인 독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왜병을 물리치던 기지

                  로 유명한 세마대가 있다. 조선 후기에 정조가 화성을 경영하던 당시의 관련 유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여러 차례에 걸친 지표조사 과정에서 삼국시대-통일신라시기에 걸친 유물이 채집되어서

                  처음 축조한 시기가 소급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禿山城을 오산의 독산성으
                  로 보는 견해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수목이 많지 않아 바위가 노출된 대머리산, 혹은 독수리가 서식하

                  는 산을 禿山이라고 부를 수 있으므로 양자를 직결시키기는 어렵다. 다만 독산성에서 채집된 유물 중
                                           26)
                  일부는 백제 토기가 분명하고,  몇 점은 백제 기와일 가능성이 높아서 백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높
                             27)
                  여주고 있다.  백제와 연결시킬 유구가 성 내부에서 발견된 적은 없어서 성벽의 초축 시기를 백제로
                  소급시키기는 시기상조이다. 앞으로 백제에 해당되는 목책이나 토성(토루) 등이 발견될 가능성은 남

                  아 있다.
                    수원-화성-오산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이후 성장한 지역 정치체는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10개를 조

                  금 넘는 양상을 보인다. 오산시와 화성시 동탄면은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별개의 단위로 편제되어
                  있으나 자연지형을 고려하면 하나의 단위 정치체를 구성하는 하부 단위였을 가능성이 높다. 동탄면에

                                                  30)
                                         29)
                             28)
                                                          31)
                  서는 감배산,  석우리 먹실,  금곡리,  청계리  등 생활유적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동탄면의 취락과
                  관련된 묘역이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과 내삼미동 취락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세교지구에 묻힌
                  것인지, 아니면 동탄지역 주민들은 별도의 묘역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 다음은 주거 구조의 차이점이다. 동탄지역은 기본적으로 사주식 주거지인데 비하여 오산 지역

                  은 사주식 주거지의 비중은 현저히 낮고 주거지 바닥보다 높게 형성된 구들을 갖춘 점이 주목된다.
                  이런 주거지 구조의 차이가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를 고려하면 삼국시대 동탄과 오산

      오산시사


                  25) 권오영, 2017, 「백제고분 출토 유리구슬의 화학조성을 통해 본 수입과 유통」 『고고학』 16-3, 중부고고학회.
      제           26) 김아관·허미형, 2001, 『오산 독산성·세마대지 시굴조사보고서』, 오산시·기전문화재연구원.

      2           27) 이형원·강정식·정지영, 2018, 「오산 독산성 백제·신라 유물의 고고학적 의의」 『오산학연구』Ⅳ, 오산문화원 부설 오산향토문화연구소.
      권
                  28) 경기대학교박물관, 2006, 『화성 감배산유적』.
                  29) 기전문화재연구원, 2007, 『화성 석우리 먹실유적』.
                  30) 서경문화재연구원, 2014, 『화성 금곡리유적』.
     82           31) 한백문화재연구원, 2013, 『화성 청계리유적 Ⅰ~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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