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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수중에 들어간다. 買忽郡이란 명칭으로 수원, 화성 일대가 편제되었는데 오산지역도 마찬
                  가지였을 것이다. 고구려는 연천의 호로고로 성을 전진기지로 삼아 남하정책을 실시하였다. 고구려

                  가 백제 옛 땅을 지배하던 흔적은 양주, 의정부, 서울 강북에 점점이 분포하는 소규모 관방(보루) 유
                  적과 몽촌토성에 남아 있다. 고구려계 횡혈식 석실묘는 연천, 성남, 용인, 화성, 제천 등지에 분포하

                  여서 고구려 세력의 확장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충청지역에도 대전 월평산성, 연기 부강리유적 등의
                  산성이 남아 있으며 충주 고구려 비는 고구려의 영역 지배와 주변 세력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오산에서는 고구려가 중부지역을 장악하던 시기, 즉 475년부터 553년 사이에 해당되는 고
                  구려 유적이 발견된 것이 없다. 다만 인접한 화성 청계리에서 고구려 석실묘가 발견된 적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다. 청계리의 고구려 고분은 2기가 나란히 위치한 쌍실묘인데 2기의 석실은 장방형 현실
                  평면, 우편재 연도, 현실 좌측에 위치한 관대 등의 공통점을 지닌다. 고구려의 고분은 연천 신답리와

                  강내리, 성남 판교, 용인 보정동, 화성 청계리를 거쳐 충주 두정리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고분군의
                  주변에서 관방유적이나 취락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점이다.

                    다만 서경문화재연구원이 조사를 담당한 가장동 5-8지점에서도 횡혈식 석실묘 1기가 발굴조사되
                                   33)
                  었는데 유물이 없다.  장방형 현실, 우편재 연도, 곧게 올라가는 벽, 중앙에 위치한 관대, 철제 관정
                  과 관고리 등의 특징을 지녀서(그림 6) 고구려 고분일 가능성이 있다.                   34)

































      오산시사

                                         그림 6. 가장동 5-8지점 횡혈식석실묘와 관정, 관고리

      제

      2
      권
                  33) 서경문화재연구원, 2013, 『오산 가장동유적 –오산 가장2 일반산업단지 조성부지 내-』.
                  34)  한편 8세기 후반 이후 신라고분에서 관정이 다시 등장한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에 이 고분을 고구려 고분으로 간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관고리의 존재는 신라 고분답지 않은 모습임이 분명하다.
     84              도형훈, 2009, 「중서부지역 통일신라 고분의 형성과 전개과정」, 『한국상고사학보』 63, 한국상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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