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4년 04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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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도록 좀 더 거대한
설치로 옮겨간다. 이제는
소형 피규어의 시선을 따
라가면서 느꼈던 즐거움
은 사라지고 산수와 혼연
일체가 되어 산수와 동일
한 감상의 대상으로 존재
하는 소형 피규어를 마주
하게 된다. 관람객의 시
선은 작가가 초대한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작품
사이를 오가며 확장되고
관람객 스스로 감상의 대
상이자 주체가 되는 공간
으로 이동해 나간다. 여
기에 ‘시선의 확장’과 ‘공
옮겨진 산수-산과 구름_가변 설치_소금, 솜, 피규어, 조명_2009_기무사 간의 이동’이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여백이라는 공간이 반드시 종이 위에 하얀색으로만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즐거웠을 법한데 작가는 디지털로 방향을 틀어
표현되어야 하는가에 의문을 품고 여백을 형상과 상상의 공간으로 전환시킨 한 화면 안에 다시점의 이미지들을 콜라주식으로 배열하고 합성하며 또 다른
‘현(玄)에 대한 사색’ 시리즈(1999~2002)에 몰두한 바 있다. 여백과 공간에 대 세계로 전진한다. 평면에서 입체 설치, 그리고 이미지 중심의 디지털 영상으
한 작가의 다양한 실험들은 다시점을 실현한 입체 설치로 옮겨오게 되면서 이 로 나아가는 변동성으로 볼 때, 작가에게 매체는 그때그때 선택 가능한 하나
를 기록하듯 사진이 개입되었으며, 이후 이는 다시 새로운 상상과 결합된 또 의 선택지일 뿐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
다른 디지털 작업으로 나아가게 된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매체를 위한 다. 개인적으로 볼 때 ‘옮겨진 산수 유람기 065’는 임택 작가의 그 어떤 진지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밝힌 작가는 기억, 재현, 상상, 경험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품보다 자신만의 특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판단된다.
시점과 공간을 다양하게 섞는다. 철저한 장인정신에 의해 공들여 만든 실제가 있지만 사진 영상을 통해 가상의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여기에 다시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선택에 따라 사라지
개인적으로 임택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4년 갤러리 현대의 윈 거나 살아남은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하이브리드 혼합체로서의 결정체를 최
도우 갤러리에 전시된 ‘옮겨진 산수’부터였다. 일반적으로 관람객은 자신만의 종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시선과 관점으로 대상인 미술품을 바라보지만, 이 작품에서는 입체
로 구성된 산수 조형물에 놓인 소형 피규어의 시선을 따라가서 그 시선을 통해 처음에는 작가의 뛰어난 유머와 흥(興)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다음에는 매
대상을 다시 보게 되는 ‘시선의 이동’과 더불어, 전통 산수의 공간인 평면에서 체를 가리지 않고 나아가는 대범함 때문에 대체 이전 작품들에서 어떤 요소
입체 설치로 옮겨간 ‘공간의 확장’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우드락 들이 이렇게 독특한 방향으로 이끄는가가 궁금해진다. 즉, 관람객으로 하여금
과 한지, 솜으로 만들어진 희디흰 산수풍경 속 옹기종기 노니는듯 알록달록한 작가의 이전 작품과 현재의 작품을 비교하게 만드는 과제를 부여하는데, 이
소형 피규어들은 관람객의 부담스러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제가 아닌 것은 평면과 입체 설치, 다시 평면으로의 전환 등 어느 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
‘만들어진’ 풍경도 상관없다는 듯 그곳이 자신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유일 고 나아가는 작가만의 특징 때문으로, 이는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강한 장점
한 세상인 것처럼 너무도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살고 있었다’. 이는 건 이 된다.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미국/1910-1962)의 평면적인 액션 페인
축 모형의 지형도나 조감도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피규어로 완성된 죽 팅 속에서 무한한 공간감을 찾아 읽을 수 있듯이, 임택 작가도 전통 산수의 평
은 환경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고 감흥이었다. 윈도우 갤러리의 규격화된 박스 면에서 찾을 수 있는 광활한 공간을 그만의 방식으로 읽고 재현하여 평면과
형태는 공간적 한계나 제약이 아닌,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티저 트 입체 설치, 다시 평면의 공간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특별히 여백에서 맛
레일러처럼, 관람객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것은 맛보기 공간일 뿐 볼 수 있는 공간감을 작가만의 독자적인 시선으로 재현하기도 하고(‘현(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뒤편에 거대한 서사를 품은 공간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대한 사색’ 시리즈), 소형 피규어가 살아가는 세상 속의 공간이자(‘옮겨진 산
수’ 시리즈), 관람객이 참여하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옮겨진 산수 유람기’ 시
이런 느낌이 가장 강하게 와닿았던 것은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리즈)으로 구현하며, 한지나 장지에 수묵으로 표현(‘점경산수(點景山水)’, ‘심
자리한 옛 군국기무사령부(國軍機務司令部) 본관 전시에서 선보인 ‘옮겨진 상경(心象景)’ 시리즈)하기도 한다. 표현 매체와 방법을 넘나드는 작가의 변화
산수-산과 구름’이다. 이것은 소금과 솜으로 이루어진 산과 구름으로, 인간 무쌍한 작업 방식이 임택 작가의 작업이 가지는 매력이자 힘이다. 그러나 격
이 거주하기 힘든 듄(Dune)의 사막 행성 아라키스(Arrakis)처럼 판타지이자 리된 세상 속 소형 피규어의 시선을 따라가며 감상했던 것은 가장 강렬한 충
일루전의 세상이다. 이렇게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동떨어진 상상의 공간 격이면서도 가장 신선했던 경험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동하는 시선은
이자 소형 피규어만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존재하던 입체 설치 산수는 ‘옮겨 지속적으로 확장되며 확장되는 공간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진 산수-유람기’에 와서는 다시 영역을 넓혀 관람객이 작품 사이로 유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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