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숨겨진 우리나라 보물찾기, 빼앗긴 한국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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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관대첩비 반출 및 반환 / 일본
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의 정식 이름은 「유명조선국함경도임진의병대첩비」이며, 비문에는 임진왜란 당시
관북, 지금의 함경도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義兵)들의 활동과 공로가 1500여 글자로 기록되어
있다. 왜병을 상대로 공을 세운 정문부는 자신의 공을 관찰사 윤탁연에게 가로채여 제대로 된
논공행상도 받지 못했고, 종전 뒤에는 남원 부사와 진주목사 등을 역임했으나 인조반정 뒤 박홍
구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다 결국 1624년 11월 19일에 옥사하였다. 40년 뒤에야 혐의가
풀려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1709년 함경도 주민들의 발의로 북관대첩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일본 유학생이던 조소앙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이 비를 발견하고는 『대한흥학보』에 「함경도임
진의병대첩비(咸鏡道壬⾠義兵⼤捷碑)」(1909년)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누가 이 사실에 분개하
지 않을 것이며 (북관대첩비를 빼앗긴) 큰 죄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며 호소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던 어수선한 상황에서 누구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한일
합방을 맞았고, 동아일보 1926년 6월 19일자 기사에는 이생(李⽣)이라고만 알려진 무명의 투고
자가 북관대첩비의 소식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비석 옆에 "대첩이라 하였지마는 그 때의 사실과
는 전연 서로 다르니 세인은 이 비문을 믿지 말라"고 쓴 나무패가 서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2006년 2월 13일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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