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월간사진 2017년 4월호 Monthly Photography Ap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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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105)더포토-김승구(8p)최종OK_월간사진  2017-03-21  오후 1:50  페이지 104





































                진경산수, 삼각산, 서울 길음동, Pigment Print, 180X675cm, 2015











                흩어져도 살고, 뭉쳐도 잘 산다                                       여가를 위한 어색한 풍경들
                김승구의 작업은 ‘풍경사진의 총체’다. 핵심은 범주화와 아카이빙이다. 여러 개의 풍경사        김승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시의 낮을 기록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진들에서 보
                진 시리즈가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시리즈는 <진경산         이는 공통된 무엇인가가 있었다. 대상만 바뀔 뿐이지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했다. 그것은
                수>, <밤섬>, <리버사이드>, <시티라이프>, <이동갈비>, <근교>다. 도시 프로젝트는 한국  바로 ‘한국 사회의 여가와 여유’였다. 한국인은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타임푸
                사회에서 목격할 수 있는 독특한 사회문화적인 현상들과 이들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고           어족’이다. 돈 버는 일과 쓰는 일 모두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은 채 살고 있다. 달
                있다. 각각의 시리즈는 도시 풍경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         력의 검정색 날을 누군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데 사용했다면, 빨간색 날은 나와 내 가족을
                면 소재가 조금씩 다르다. 가령 <진경산수>가 프리미엄 아파트의 조경을 보여준다면, <시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가를 즐기고 약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어디든 상
                티라이프>는 도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여가의 현장을, <이동갈비>는 도시와 전원이 뒤        관없다. 번잡한 수영장일지라도 물에 발 한 번 담가야 하고, 근교에 있는 고깃집에서 술
                섞여 탄생한 대안 풍경을 담아내는 식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이면 파급력은 배가 된다. 흩       마시고 노래도 불러야 하며, 인공 정원에 가서 그럴 듯한 자연 체험을 해야 위안을 얻는
                어져 있을 땐 어느 지역의 일부를 보여주지만, 뭉치면 한국 고유의 풍경을 전체적으로 보        다고 생각한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어색한 풍경들이다.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
                여주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각각의 시리즈는 ‘범주화’에 속하고, 프로젝트는 ‘아카이        서 보면 희극 같기도 하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애잔함, 기이한 공간을 보며 머
                빙’에 속하는 것이다. 즉, 김승구의 작업은 이합집산이자 펀치라인인 셈이다.              금게 되는 조소 등 다층적인 감정들이 머릿속을 동시에 지나간다.
                                                                        하지만 김승구는 한국 사회의 인스턴트식 여가와 여유를 위한 욕망을 비판하진 않는다.
                흔적으로부터의 사색                                              이것이 한국 사회의 가진 특유의 풍경이고, 그의 작업은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데 방점
                도시 프로젝트는 고단했던 그의 젊은 날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늦        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김승구의 작업은 우리 사회에 대한 증거이자 연구 자료다. 시간
                은 밤 도시를 걸으며 사람들이 남긴 도시의 흔적을 찾아 구경하는 일은 낮 시간에 가져보        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양이 방대해지면 방대해질수록 그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하지
                지 못한 짧은 휴식이었다. 건설현장에서, 공공장소 등에서 도시의 흔적들을 좇았다. 이는        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사진 공개 방식이다. 아카이빙 작업은 방대한 사진으로 구성돼
                일종의 자기 위로 성격이 강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낮의 흔적을 채집하는 동       야 결집력을 갖는다. 그런데 전시와 출판은 수 백 장의 사진을 동시에 보여주기에 물리적
                안 잠시 멀어졌던 고단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담담함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문득 궁          제약이 따른다. 그렇다고 시각적 임팩트를 강조한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자니 작업 맥락
                금해졌다. 밤이 아닌 낮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도시 프로젝트가 시        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보는 이가 사진을 보고 우리 삶의 의미를 고민할 때
                작되는 순간이었다. 미시적인 시선이 거시적인 시선으로, 자의적인 공간이 타의적인 공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데, 사진 공개와 연대 사이에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어떤 해
                간으로 전환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결책을 고민하고 있을까. 현재진행형, 아니 앞으로 얼마나 오랜 날 오랜 밤을 투자해야 할
                도시의 모습을 밀도 있게 기록하고 싶었다. 깊숙이 들어가기보다는 멀리서 관조하듯 관          지 가늠이 되질 않는 이 프로젝트에서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찰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을 모은다면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의 흐름을 보
                여줄 수 있는 시각자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위해선 유형학적인 구성이 필
                                                                        김승구 상명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예술전문사를
                요했다. 하지만 유명 기성작가들의 형식을 답습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
                                                                        마쳤다. 2014년 송은아트큐브 전시 지원에 선정되었으며, 2015년 송은아트큐브와 2016년 탈영역
                람들을 놀라게 할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컸다. 고민의 결과 구도와 시선, 피사체        우정국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부산 BMW Photo Space에선 그의 개인전 <유리의 성>(~4.22)이
                의 배치 모두 기성 유형학적 사진의 틀 밖에 있는 작품으로 이어졌다.                  진행 중이다. www.seunggu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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