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PHOTODOT 2018년 5월호 VOL.51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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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ist Portfolio 1











            Space After Spectacle_권해일




















                    산언덕 판자촌을 밀어버리더니 부촌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아파
            트가 들어섰다. 강 건너 번쩍이는 동네와 가깝다고 웃돈이 붙길래 나는 경쟁
            에서 질 것 같은 기분에 기어이 한 모서리를 사고 말았다. 숫자가 붙은 허공
            에 지어진 네모 한 칸은 법적으로는 내 집이지만 나는 불안하다. 집을 사면
            서 나는 벌써 팔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기 드보르(Guy Debord)는 나 같은 놈이 세상에 넘쳐 날 것을 50여 년 전에
            경고했다. 그는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고, 상품 물신의 형태를 ‘스펙터클’이
            라고 했다. 스펙터클은 우리를 더는 이성과 감성이 작동되지 않는 구경꾼으
            로 전락시켰다. 우리는 우리끼리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스스로 소외시
            킨다.
            그 사이 아파트는 스펙터클의 표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사장 바닥에는 암
            호 같은 숫자와 기호, 약호들이 난무하다. 외벽 전체를 둘러싼 가림막은 내
            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추려는 것이 분명하다. 전선들은 어디로 연결되
            는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고, 가느다란 철골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가 연결된 후 걸쭉한 시멘트로 덮인다. 어제의 바닥이 오늘은 천장으로
            변하고, 매끈했던 면에는 하루 만에 돌기가 솟아나 있다. 아무런 규칙 없이
            보이지만 복잡한 질서에 매몰되어 보지 못한다. 세상은 나와 우리를 어떻게
            교란하는가? 스펙터클의 과정도 그 결과만큼이나 스펙터클 하다는 것! 나는
            불안과 구토를 느낀다.


            나의 사회적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만큼 지적이지 못하기에 사진으로
            말하고 싶다.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
            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사실! 우리는 강요 없는 선택의 역사를
            가지지 못했기에 세속화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주도면밀해지려고 노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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