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PHOTODOT 2018년 5월호 VOL.51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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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dot + Radar 2
강용석_동두천 기념사진_Pigment Print_124x90cm_1984 강용석_동두천 기념사진_Pigment Print_124x90cm_1984
타자의 초상_Portraits of Others
글_ 김혜원(사진가)
예술 활동의 기반을 인문학적 사유에 둔 예술가들의 전시와 그들 담론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에서는 그 네 번째 기획 시리즈로 「타자의 초상(Portraits of Others)」展을 개최한다. 초상사진은 사진 발명 초기부터 근
대 사회와 함께 새롭게 부상한 부르주아의 이상화된 모습을 재현하면서 초상의 민주화를 이끌고 근대적 주체를 가시화
하며 사회 통합의 효력을 발휘하는 데 이바지해 왔다. 동시에 권력과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되는 타자를 재현한 사진들은
그들을 구획하여 억압하는 데 이용됐다. 즉 19세기 근대 기획에 연루되어 표상의 체계로 사용된 초상사진은 앨런 세쿨라
(Allan Sekula)가 지적했듯, 부르주아의 초상을 통해서는 영예롭게 작용하고 타자의 초상을 통해서는 억압적으로 작용함
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타자의 초상」展에서는 배제되고 차별화된 타자, 여성·이주민·노동자
등과 같이 권력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억압당하는 하위 주체(subaltern)를 정치적, 지역적, 인종적, 성별(性別)에 따른 층
위에서 재현한 강용석, 김혜원, 조현아, 차경희의 사진을 초대하여, 이들이 초상사진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재현 구조의
의미와 재현 전략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예술적 성찰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강용석(Kang, Yong-suk)의 「동두천 기념사진(Dongducheon 그런데 이 ‘동두천’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념사진 형식으로 재현되
Commemorative Photographs)」 었다는 점이다. 초상사진은 사진 발명 당시 새로운 계급으로 부상한 부르주
「동두천 기념사진」은 정치적 층위에서 타자의 초상에 접근한 아들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보여줄 표상을 소유함으로써 근대 사회의 주
사진이다. 그것은 강용석이 분단 한국의 기표로 작용하는 ‘양공주’의 초상사 체가 되고자 한 데서 출발하였다. 이미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상업적
진을 통해 주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의 분단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기 으로 이용하여 사진관을 통해 제작되어 유통되는 산업 제품, 소유할 수 있는
때문이다. ‘양공주’가 외국인을 상대로 성(性)을 파는 여성에 대한 경멸적 호 소비 품목으로서의 사진은 사치성을 지닌 사회적 이벤트였다. 따라서 미군
칭이듯, 동두천 보산리 미군 부대 근처 술집의 ‘양공주’는 한국사의 치부를 병사가 이국에서 보낸 젊은 한철을 사진이라는 장식품을 통해 기념하는 것
드러내는 존재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사회적 천민으로 배제 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미군 병사에게는 주둔국 여성과 함께 찍은 이
되어 온 하위 주체였다. 특히 이들은 서구의 타자인 제 3세계 한국인, 남성의 기념사진이 주둔국에서의 여흥을 즐기기 위한 대중 문화적 이벤트의 하나였
타자인 여성, 외화벌이 성 노동자라는 최하층 여성으로서 삼중의 타자가 되 고, 강용석은 이를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컬러의 기념사진 형식으로 재현하
어 철저히 배제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여성의 모습은 미군 병사가 한 였다. 그러나 그가 이를 기념사진으로 재현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국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공산화로부터 지켜준 미국 영웅주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념화, 여성 신체에 가한 폭력의 기념화, 세계의 경찰국
의의 이미지와 중첩된 것과 대조가 된다. 따라서 강용석은 위압적이고 당당 가라는 핑계로 약소국을 점령한 식민제국의 기념화가 타당한지를 묻고자 한
하고 활기에 찬 미군 병사와 밝은 표정이거나 무표정이거나 슬픔이 배어 나 데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용석은 이러한 인류 보편적 물음을 세계 유일
오는 ‘양공주’의 초상을 통해 한미 간 힘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보 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양공주’, 그 훼손된 몸을 전리품처럼 찍은 이 ‘기념사
강용석_동두천 기념사진_Pigment Print_90x124cm_1984 여주면서, 이를 나약하고 초라한 주권 국가의 초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진’을 물적 증거로 하여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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