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월간사진 2017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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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대면의 경험을 요구한다”고 함으로써 사진이 물질성을 획득함에 따라 미니멀
                   리즘의 현상학적 대면성이 사진에서도 가능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관객과 사진 이미지와의 관계성
                   이 사진의 감상에 부각되고, 프리드는 슈브리예의 논의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프리드는 프린트의 크
                   기가 커지면서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사진의 디스플레이 방식이 변했음을 강조하면서 사진과 관람자
                   의 관계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한다.

                   현대 사진에서 미니멀리즘의 미학: 베허, 루셰, 발츠의 무표정 사진
                   현대 사진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미학은 단순성과 정면성(frontality)이다. 현대 사진의 단순성과 정
                   면성의 미학의 우세는 독일의 베허 부부의 무표정한(deadpan) 건축물 사진이 주도했다. 베허 부부
                   는 1970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기술적 건축구조물 비교(Vergleich Technisher
                   Konstruktionen)> 전을 열었다. 전시는 피셔 갤러리의 개념미술 시리즈 전시 중 일부로 기획되었는
                   데, 이 전시를 통해 미국 갤러리스트들이 베허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0년대 초에 들어 베허
                   부부의 사진은 국제 미술시장에 유입되었고, 자신들의 고유한 사진제작으로 북아메리카의 산업지역
                   에서 실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일명 ‘무표정’ 혹은 ‘표현이 결여된’(deadpan)
                   사진을 제작함으로써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표현으로 대상의 ‘익명성(anonymity)’을 부각시켰는데
                   이러한 사진제작 방법론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수했으며 그 영향이 토마스 스트루스, 칸디다 회퍼
                   (Candida Höfer), 안드레아스 그루스키(Andreas Gursky)등의 사진에 나타난다. 개념미술의 맥락에
                   자리하게 된 베허의 북아메리카로의 진출은 이후 현대 미술에 있어서 사진의 우세를 주도하였다.
                   1990년 미국에서 열린 <베허의 영향(The Becher Influence: Bechers, Gursky, Hütte, Ruff, Struth)>
                   전 등 많은 전시들이 베허의 영향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었다. 이러한 전시는 뒤셀도르프학파                    무표정과 정면성의 미학을 부각한 루이스 발츠의 <Dana Point #2>(1970)
                   의 작업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일명 베허 스쿨로 불리는 이들의 작업은 현대미                                              ⓒ Lewis Baltz
                   술에 있어서 특히 다큐멘터리, 건축적 구조, 유형학적 사진의 세계적인 유행을 주도해 왔다.
                   베허 부부는 “우리와 유사한 작업을 한 유일한 작가는 캘리포니아에서 주차장을 찍은 에드 루셰(Ed
                   Ruscha)다”라고 강조한다. 사진을 주로 이용하는 개념미술작가 루셰는 이미 1963년 무표정 사진 작
                   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1963년 <26개의 주유소>를 제작한 이래, 1967년 <36개의 주차 구역> 사진
                   집을 발표했다. 베허부부는 이 주차장 사진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와 같은 길을 향하고 있다고 본 것
                   이다. 베허와 루셰 작품에 나타난 미니멀리즘의 단순성의 미학과 개념미술의 무표정성은 1970년대
                   와 80년대 루이스 발츠(Louis Baltz)의 작품에 나타난다. 발츠는 규격화된 주택, 창고나 건축파편과
                   같은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도시화의 단편을 무표정과 정면성의 미학을 부각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포스트포토그래피 시대의 미니멀한 풍경 사진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구축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풍경 <The Rhine II>(1999)
                   베허, 루셰, 발츠의 작품에 나타난 무미건조한 무표정의 도시 풍경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그 전환을                     ⓒ Courtesy Monika Sprueth Galerie, Koeln / VG Bild-Kunst
                   맞는다. 슈브리예가 주장한 사진적 객관성에 기반한 오브제이자 동시에 허구성을 허용하는 이미지이
                   기도 한 제3의 객관성을 보유한 특수한 사진(specificpictures)은 2000년 들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용이하게 제작된다.
                   요셉 슐츠(Josef Schulz) 역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구현한다. 그의 <Sach-
                   liches> 시리즈는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고 있으나 건물의 세부가 제거되어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이
                   질적인 상상의 풍경처럼 보인다. 그는 실재하는 건물의 사진을 찍고 그 세부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
                   다. 환원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건물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비현실화되는 한편 평면 이
                   미지임에도 미니멀리즘의 3차원적 물질성은 강하게 부각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라인 강의 사
                   진을 찍고 디지털 후작업을 통하여 허구적으로 구축한 라인 강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라인 강
                   변에 존재했던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 혹은 공장 건물 등 수많은 세부들을 말끔히 제거하고 매끄럽게
                   다듬은 구르스키의 사진은 실재하는 풍경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라인 강이라는 허구적 이
                   미지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풍경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
                   소를 찍은 그 사진은, 그러나 우리가 그 장소를 찾아가서는 직접 볼 수 없는 타블로로만 소비되는 풍경,
                                                                                       미니멀리즘의 3차원적 물질성을 부각한 요셉 슐츠의 <Halle Rot-Grau #1>(2001)
                   즉 상상적인 것이다.                                                                               ⓒ Heinz-Martin Weigand Gallery
                   이들의 사진에서 우리가 늘 보는 장소, 위치, 공간, 사건의 현장은 우리에게 실제 존재하지 않는 풍경
                   으로 인식론적으로 다가온다. 이 풍경 사진들은 실제 존재하는 어떤 것의 시뮬라크르로 다가오기도 한
                   다. 이 사진적 객관성을 골조로 한 단순화된 풍경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위의 자연’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식론적으로 전체 게슈탈트(total gestalt)를 보게 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어떤 진실
                   을 관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진실이 아닌 가짜 풍경이라고 볼 수 없다. 미니멀리즘이 불필요한
                   외향을 제거하여 본질을 만나고자 것이라면 이들의 사진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버림과 환원의 과정
                   을 통해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미니멀한 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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