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월간사진 2017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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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의 신체와 작품과 대면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객의 경험이 작품의 의
미를 생성한다.
저드는 1965년 <특수한 오브제(Specific Object)>라는 글을 발표하며 미니멀리즘 운동을 선언했다.
특수한 오브제는 기하학적 단순성 등 일반적인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따르고 있지만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진 입체 작업이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이들의 기하학적 입체 작품
은 그것이 놓이는 공간 안에서 관객의 신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작품으로서 의미를 생성한다. 관객
은 작품이 놓인 공간 안에서 미니멀리스트들의 작품을 대면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상학적 경험
을 획득한다.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는 미술을 감상하는데 왜 이런 극(theatre)의 상황과 조
건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들의 작품이 예술(art)이 갖추어야 할 조건, 즉 작품 자체의 존재
감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 천박한 사물성(objecthood)으로 관객을 유혹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작품의 의미생성에 있어 작가의 주도권이 관객에게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현
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미니멀리스트들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작품에서 텍
스트로’와 ‘저자의 죽음’에 상응하는, 즉 관객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는 작품 혹은 관객/신체 또한 작
품에 포함되는 작품과 관객의 현상학적 관계를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살펴보겠지만, 프린
트 기술의 발전으로 크기가 커져서 관객의 신체에 상응하는 형태의 감상이 가능해진 현대 사진과 무
관하지 않다.
‘특수한 사물’에서 ‘특수한 사진’으로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라는 개념은 입체 작업의 3차원성을 전제로 하기에 언제나 평면일 수밖에 없
는 사진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1989년 쟝 프랑수아 슈브리예(Jean-François
Chevrier)와 제임스 링우드 (James Lingwood)는 도널드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 개념을 사진에 적용
하여 ‘특수한 사진(specific pictures)’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들은 <또 다른 객관성(Another Ob-
jectivity)>이라는 전시를 기획하여 토마스스트루스(Thomas Struth), 해나 콜린스(Hannah Collins)
등의 커다란 크기의 사진이 오브제이자 동시에 이미지(object-image)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명백히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를 차용한 ‘특수한 사진(specific pictures)’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객관
성(objectivity)을 이미지 자체이자 물질적 생산품으로서의 이미지, 즉 오브제-이미지라는 개념으로
‘특수한 오브제’를 통해 미니멀리즘 운동을 선포한 도널드 저드의 <Untitled>(1972) 변환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작가들의 커다란 크기의 사진은 사물적인 요소와 조형적인 요소를 동시
ⓒ Donald Judd Foundation/VAGA
에 가지고 있다. 마치 저드의 ‘특수한 오브제’가 시간과 공간속에서 관객의 경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반 오브제와 구별되듯이, ‘특수한 사진’은 객관성을 담보한 실제 이미지 위에 조형적 요소, 즉 허구
(fiction)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사진은 특수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내포하게 되
는데, 그 이유는 사진이 대상(object)이자 이미지(image)로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
진의 커다란 스케일과 함께 표현된 사물의 객관성이 미니멀리즘 운동에서 저드가 말한 특수한 오브
제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역시 특수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객관성’에서 ‘또 다른 객관성’으로
이상에서 주목할 점은 사진에 있어서 ‘객관성(objectivity)’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해 왔는가하는 점
이다. 사진의 탄생과 함께 대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사진의 객관성은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없는 아킬레스 건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대로 스트레이트 포토에서는 사진이 본성 그
대로를 인정하는 것, 즉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객관성을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특수한 사진으로서 진정
사진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단순성과 정면성을 대표하는 베허 부부의 <Industrial Facades>(1972–1995) 슈브리예와 링우드는 사진의 객관성이라는 개념에 ‘또 다른(another)’을 붙임으로써 사진이 현대미
ⓒ Bruce Silverstein Gallery 술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다. 그들의 ‘특수한 사진’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객관성을 기반으로 하되, 그 객관적 이미지가 사물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조형적 이미지로 향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오브제이자 이미지이기도 한 ‘특수한 사진’은 웨스톤의 작품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사진의 평면적 추상성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이 제3의 객관성(another objec-
tivity)은 모더니즘의 형식적 환원주의를 거부하고, 시각적인 것의 복합성, 경험의 우연성, 그리고 허
구의 가능성을 가지는 사진 이미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진의 객관성 위에 재현(representation)
의 예술성을 덧입힌 것이다.
사진의 ‘또 다른 객관성’은 물질성 확보로 가능해졌다. 1980년대 들어 프린트가 더욱 커지고 색채가
선명해짐으로써 사진은 전례 없는 물질성을 얻게 되었다. 미니멀리즘 운동에서 작품의 인간 신체에
상응하는 물질성이 중요하듯이, 사진도 인간신체에 상응하는 크기의 물질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프린트 기술은 한층 발달하여 크기와 색채의 구사가 더 자유롭게 되면서 사진은 감상
자와 작품 간의 현상학적 대면성(confrontality)을 얻게 된다. 슈브리예는 이제 사진이 “벽을 필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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