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월간사진 2017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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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1
미니멀리즘과 사진
최소한의 것, 본질만 남긴 단순성
우리는 복잡하지 않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로 이루어진 것을 ‘미니멀하다’고 한다. 미니멀한 삶이
있고 미니멀한 음악, 미니멀한 패션이 있다. 미니멀한 건축, 회화, 사진, 조각이 있다. 미니멀리즘은 장
식성을 배제하고 단순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단순(simple)하다고 해서 모두 미니멀(minimal)하지는
않다.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남길 수 있는 태도를 요한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본질 이외의 것을 점진적으로 제거해가는 환원(reduction)의 과정
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니멀리스트는 에센셜리스트(essentialist)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되
기 위해서는 본질을 파악하는 철학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복잡을 뚫고 단순하게 적을 제압하라!”는
절권도의 창시자 리샤오륭(Lǐ Xiǎolóng)의 명언은 우리에게 철학적 울림을 준다. 바꾸어 말하면 대상
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라는 말이다.
미술에서 대상의 본질을 그려내고자 하는 고민은 불필요한 표현을 제거하고 묘사와 색의 절제를 통
한 단순화의 과정으로 나타났다. 곧 추상의 길이다.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수직과 수평이라는
본질적 조형요소만을 남긴 순수추상에 도달한 것도 대상의 본질을 파악해가는 과정을 거쳐 나온 결
과이다.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흰색위의 흰색(White on White)>은 회화의 사실적 환영주
의의 불필요성을 주장하고 극도로 단순한 구성으로 절대성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대표적
인 예이다. 모더니즘 건축에서 단순성의 추구는 기능주의 등을 거치며 형성된 최소한의 선과 면으로
공간을 구분한 구조와 형태를 예찬한다.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hoe)의 압축된
선들로 이루어진 건물들은 최소한의 형태마저 거부하고 공간만 남은 듯 단순하다. 루이스 칸(Louis
극도로 단순한 구성으로 절대성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말레비치의 <White on White>(1918) Kahn)의 절대무위의 중정은 단순함의 극치로 건축의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다. 타다오 안도(安藤 忠
雄)는 기초적인 기하학적 형태, 무장식성, 단순한 재료와 기본적인 구조의 반복을 통해 단순성을 추구
한다.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는 현대 예술의 중요한 미학적 테크닉의 하나로 단순화를 들면서 최소
의 엑스트라와 공간을 활용해 영화를 만듦으로써 영상 미학의 품격을 올려놓았다. 클린트 이스트우
드(Clint Eastwood)의 영화는 간결한 구조와 연기로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존 케이지(John Cage)가
4분33초 동안 아무 소리가 없는 음악회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것은 관습과 규율을 파괴하는 것이
자 지나치게 구조적인 복잡한 음악에 대한 저항이었다.
사진의 미니멀리즘: 스트레이트 포토와 사진의 본성 회복
사진에서 단순성의 추구는 스트레이트 포토의 등장과 함께 발현한다. 20세기로 전환하는 시기에 일
어난 회화주의 사진(pictorialism) 운동의 물결 속에서 카핀(Charles Caffin)과 하트만(Sadakichi
Hartmann) 같은 사진비평가는 사진 매체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사진적인 것은 무엇일까라
에드워드 웨스톤의 사막 풍경에서 평면성과 단순성의 추구는 극에 달한다.
는 물음 끝에 그들은 사진의 취약점이라고 여겼던 객관성을 인정하고 사진이 더 이상 다른 매체를 흉
넓디넓은 사막으로 가득 차 있는 웨스톤의 프린트는 근경과 원경 모두
내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트만은 1904년 발표한 <스트레이트 포토를 위한 간청(A
거의 같은 강도의 정확성과 날카로움으로 표현되어 있어 원근법적 공간의
Plea for Straight Photography)>이라는 글을 통해 이제까지 회화주의 사진이 주관성(subjectivity)
깊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원경으로 갈수록 뒤로 쑥 빠지는 점진적인 공간의
의 표현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후 사진은 매체의 본질적인 속성에 맞게 객관성(objectivity)이라는 개
후퇴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화면 전체가 평평하게 일어서는 느낌이다.
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꾸어 말하면, 화가의 손으로 그린 것 같은 사진을 추구하지 말
고, 기계적 객관성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사진 본연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주도한 <카메라 워크(Camera Work)>지를 중심으로 활
““
발한 사진비평 활동을 펼친 이들은 사진의 매체 순수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1940년 경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매체-순수성 이론을 주장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사진에서 매체-
순수성이론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스트레이트 포토로 전환하면서 사진에서 불필요한 효과 내기가
사라져가고 기하학적 단순성을 선호하는 미학적 경향으로 향한다. 스트레이트 포토로 전환한 이후
뉴욕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주제로 작업한 스티글리츠나 폴 스트랜드(Paul Strand)의 모더니즘 사진
은 공간의 깊이를 버리고 평면성과 단순성을 추구한다.
스트레이트 포토에서 미니멀리즘 미학의 정점은 캘리포니아의 F64 그룹을 대표하는 에드워드 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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